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미국의 기업 코닥. 여러 해 전 국내 언론들은 '코닥이 망해서 사라졌다'는 식으로 기사를 전했습니다. 코닥은 경영난 끝에 2012년 '파산보호신청'을 미국 법원에 냈었고 그러기 전까지 구조조정을 진행중이었죠. 특허들을 내다 팔기도 했고, 돈이 안 되는 필름 생산 라인과 제품을 줄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슬라이드필름들도 그 희생양이었는데,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E100VS와 E100G 필름을 2012년 3월 1일에 단종시켰었습니다.


파산보호신청은 말하자면 법정관리같은 것이어서 파산하지 않도록 채권단으로부터 자산을 보호 동결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절차로 압니다. 그러니 경쟁력있는 부분만큼은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이죠.


파산보호기간을 거치면서 코닥은 몇 개의 회사들로 쪼개졌는데, 그 오랜 기간동안 코닥을 먹여 살렸던 아날로그 사진 부문(필름, 약품, 감광인화지 등등)은 영국자산공사 펀드가 인수하면서 코닥 알라리스(Kodak Alaris)라는 이름의 회사로 떨어져나갑니다. 좀 의외지만 영화용 필름은 미국 코닥에 남겨두었는데요, 아마도 유통과정이 달랐거나 했던 모양으로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조조정과 회생과정이 끝나고 시장수요만 있다면 코닥은 분명 슬라이드를 다시 생산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었습니다. 


http://irooo.tistory.com/19 


그리고 만 5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 무려 2017년 새해 벽두에 코닥은 엑타크롬 필름의 부활을 알려옵니다.



이 소식때문에 필름사진계는 난리네요. 실제로는 아직 필름이 발매된 것은 아니고, 2017년 4/4분기에나 판매될 것이라고 합니다. 135필름만 먼저 나올 것이라고도 하구요.


어쨌든, 코닥의 E100 시리즈를 그리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 필름으로 촬영된 사진을 다시 볼 생각을 하니 두근거림에 눈물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간밤에는 잠이 들었다가 새벽 4시에 문득 잠이 깨었는데, 괜히 열어본 페이지에서 이 만우절 기사같은 뉴스를 접하고 흥분해서 잠을 다 설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필름사진 시장의 확실한 부활입니다. 

필름 사진을 시작하고 즐기는 분들이 많아지고, 필름 카메라 가격들이 비싸지고, 아마츄어와 프로 할 것 없이 필름으로 촬영하는 절대 사진의 양이 늘어났습니다. 코닥도 자신들의 뉴스에서 최근 몇 년간 필름 판매량이 저점을 찍고 증가중이라는 발표를 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 엑타크롬 슬라이드의 재발매로 이것이 확실히 공인된 셈입니다.


- 새로운 필름들이 더 나올 것 같습니다.

코닥이 망해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셨던 것은 오해입니다. 코닥은 여전히 필름사진 시장의 거목이었습니다. 코닥이 이렇게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하면 후지를 비롯한 다른 메이커들도 대응하게 마련입니다. 필름사진 시장이 비록 코딱지만해졌을지는 모르지만, 그 코딱지들은 매우매우 영양가가 높고 마진이 큰 부분이어서 그냥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못할 겁니다. 특히나 코닥과 후지가 아닌 다른 제조사들의 행보가 빨라질 것 같습니다.


- 필름사진의 수명이 연장됐습니다.

코닥이 슬라이드를 접고 후지도 하나둘 접고 이제 판매되는 슬라이드는 벨비아50과 100밖에는 남지 않았었습니다. 심지어 코닥의 경우는 슬라이드 현상약품마저 구할 수 없게 되었었습니다. 비관론과 긍정론이 공존했었지만 비관적으로 보자면 슬라이드 필름은 앞으로 5년 혹은 길어도 10년이면 더는 생산되지 않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군소메이커가 필름을 만들어도 현상약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니까요. 아그파에서 CT100을 내놓고 마코에서 롤라이 이름으로 조금은 만들어 냅니다만 현상약품은 공급하지 않으니까요. 이제 이번 엑타크롬 재생산으로 이런 걱정이 당분간 사라지게 됐습니다.


- 그밖의 분야들도 혹시...

새로운 필름카메라도 발표될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하이엔드 P&S 카메라들의 수요와 가격이 장난이 아닙니다. 덩달아 다른 카메라들도 가격이 뜁니다. 수리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합니다. 다시 필름을 취급하는 현상소들도 더 생겨날 것 같습니다. 필름사진을 취급하는 온라인 미디어, 채널, SNS도 더 생겨날 것 같습니다.



얼른 나왔으면 좋겠네요. 얼른 써보고 현상해보고 스캔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네요.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