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15. 2. 15. 11:25

죽으면 빈소 앞에 올려질 사진, 영정 사진.


미리 준비해두면 고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살다보면 대개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생겨난 게 '영정사진 촬영 봉사'활동인데, 참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그 나이쯤 되면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당신 죽으면 이 사진 쓰라고 미리 찍어주는 건 어쩌면 어서 죽으라는 얘기 같기도 하고, 젊고 이쁠 때 사진도 아니고 이제 다 늙어 꼬부라졌는데 와서 당신 죽으면 걸어둘 사진 찍어준다니 섭섭할만도 한데.


그 나이가 되어서 그런 상황에서 봉사를 받아보지 않아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 봉사를 하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게들 좋아라 하신다고.


그리고 언제부턴가 '영정사진'이라는 말 대신 살아 생전에 즐겁게 찍는 사진을 '장수사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런 복잡미묘할만한 간극을 잘 메워주는 용어 선택이기도 한 것 같고.


'하루라도 젊고 예쁘실 때 미리 잘 찍어두시면 좋잖아요'


내 경험으로도 이 말 싫어하는 어르신들은 한 분도 안 계셨던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게 아니라 어쩌면 지금 당장일지도 모른다. 셀카봉 들고 selfie 찍는 거 얘기가 아니고, 사진에 사람들을 담자.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5. 2. 14. 11:24




 2014년, 작년 1월의 어느날 현상사고가 났습니다. 원인은 기계 안의 라크(lack)를 구동시키는 벨트가 끊어진 거였습니다. 후지

필름의 컬러네거티브필름 자동현상기들은 필름 이송을 전용의 벨트를 이용해서 하게 되어 있는데, 이 벨트가 독한 약품속에서 오래 돌아가다보면 삭아서 끊어지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이 기계는 이미 단종된 지 수 년 이상 지나고 소모품(이 벨트는 그래서 소모품입니다)은 더는 만들어지거나 공급되지 않아 구할 수 없어서, 최대한 버텨본다고 국내의 나까마(현상장비들을 유통하는 업자분들을 그렇게 부릅니다)를 통해 중고기계들이 매물로 나올 때마다 매입해서 기계는 해체하고 중요 부품들만 쟁여놓곤 했었는데 새 벨트가 아니고 쓰던 부품들이라 이미 어느 정도는 삭아 있어서, 갈아끼워도 오래 못 버티곤 했던 겁니다. 1월에 끊어져서 마지막 벨트로 갈았는데, 마지막으로 갈던 그 벨트도 이미 오래 쓰지는 못할 상태였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장비 교체를 결정했었고 드디어 2월 14일에 실행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수만 롤의 필름들을 현상하느라 무척이나 고생이 많았을 이 현상기는 수리할 부품이 없어서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가 없었기에, 팔려나가는 신세조차도 안 되고 그저 고철이 되어 실려나갔습니다. 들어올 때는 비싼 몸이셨지만 나갈 때는 치워달라고 비용을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돌아보면 아날로그 사진처리 업계가 다 그렇습니다. 장비들은 노후되었고 수리할 수는 없거나 하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셈이지요.


물론 자동으로 처리하는 이런 장비들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못할 것은 없을 겁니다. 손으로 하면 되니까요. 아날로그니까요.


2014년 발렌타인데이의 추억.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4. 3. 27. 20:41

겨우 한 달여 만에 '저작권 침해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예상했던 판결이고.


그리고...


대한항공의 의뢰와 취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유사한 사진을 싸게 사용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며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대한항공을 비난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유명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시안을 받아봤는데 본견적이 너무 비싸서 그 시안을 넘겨주고 무명의 디자이너에게 품삯만 받고 흡사한 디자인을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다는 모 기업의 예와 유사한데.

풍경에는 누구에게도 선점할 권리나 저작권이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풍경을 찍은 사진에는 저작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문제는 누구나 유사한 풍경을 찍을 수 있다는 점. 이 부분의 저작권과 유사성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결국은 이 소송의 쟁점이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온라인에 만연한 사진 도용(이라고 하면 좀 세겠지만, 출처를 모르는 이미지를 가져다가 SNS에 올리는 것도 사실 비슷한 것이라 할수도)의 경우 원본 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이 사진이 내 사진이다'를 증명하면 그에 대한 권리 등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비슷한 사진을 사용해서 벌어질 수도 있는 해프닝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내 사진하고 똑같은 다른 사진일 수도 있는 것.

같은 포인트에서 같은 화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풍경을 담으면 사진은 얼마나 달라질까. 어떤 사진적 기법으로 다른 사람은 모방할 수 없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촬영전의 상황, 촬영에서의 기법과 노력, 이후의 이미징과 리터칭으로 이미 수없이 유사한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 풍경사진은 그러면, '유사함만으로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분야가 되어버려야 마땅한 것일까.

혹 어쩌면 케나는 스스로 자신의 저작권 혹은 타인의 모작으로 인해 자신의 독창성이 침해당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그것을 어떤 권리로 주장하는 것의 말도 안됨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도 무엇인가 어떤 보호받고 싶고 또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역설하고 싶은 건 아닐까.

사진과 사진가의 권리에 대해 사진가들이 지켜야 할 상황에서 거꾸로 사진가와 사진가 사이의 어떤 가치에 대한 권리다툼 사이에서 이쪽 사진가들과 저쪽 사진가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지켜져야 할 어떤 가치의 정립(그것이 아무리 허공을 헤짚는 듯한 공허한 것처럼 보일지라도)에 노력을 기울이려는 자세보다는 '그런 류의 사진에는 저작권이란 없다'는 짧은 단정을 해내는 많은 판단들을 보면서(심지어 나조차도) 사진과 사진가의 권리란 어쩌면 이렇게 요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사진에 대해 내가 가진 권리는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까 하는.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