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19.04.14 00:31

다시금 필름사진을 많은 분들이 즐기게 되면서, 옛날에 제조-판매되었지만 미처 사용하지 않은 필름들이 발굴(!)되어 드디어 빛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필름들은 국내에서는 사진동호회의 장터나 중고거래 장터, 혹은 드물게 필름 기자재 상점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외국에서는 ebay 등의 마켓플레이스에 올라온 매물을 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진용 필름들은 제조일자로부터 2년 정도를 유통기한으로 표기해서 판매됩니다. 유통기한은 필름이 포장된 종이박스에 찍혀 있습니다. 종이 박스를 열고 필름을 꺼내면 플라스틱 통 안에 필름이 들어 있습니다. 중형 필름들은 마치 사탕봉지처럼 비닐 혹은 종이로 포장되어 있죠. 이렇게 종이 상자 포장을 벗겨내면 유통기한 표시가 사라져 정확히 언제 제조된 것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어쨌든, 유통기한을 지나버렸다는 건 언젠가 알 수 있겠죠.

 

이렇게 오래된 필름들을 항간에는 빈티지필름이라고 부르거나, 혹은 단종되어 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원래 발매당시의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필름의 성능은 떨어지는 것이어서 더 비싼 가격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오래된 필름으로 촬영해서 나오는 색바랜 혹은 제대로 발색이 이뤄지지 않거나 특성이 발현되지 않아 생기는 여러 경우의 미흡한 사진들을 '빈티지'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불어온 필름사진 유행을 틈타고 등장한 조악한 상업주의에 이끌린 결과라고 봅니다. 특히나 이런 필름들은 얼마나 오래됐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관되었는지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기때문에 시험삼아 촬영하고 현상해보기 전에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오래된 필름들(expired films)은 원래의 싱싱한 필름에 비해 여러 성능과 특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미세하게 노광되어 탁해지는 포깅(fogging), 유제의 반응력이 약해져 생기는 감도저하, 베이스의 경화로 인한 컬링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의 종합적 결과로 발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색이 틀어지거나 노출이 부족하다거나 그레인이 더욱 거칠게 올라오거나 하는 등의 증상이 생깁니다. 이 중에 특히 원래의 감도로 촬영해도 노출이 부족해지는 감도저하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그래서 '오래된 필름으로 촬영할 때에는 노출을 더 주어라'거나 '더 낮은 감도로 촬영해라'와 같은 팁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유통기한 몇 년당 몇 스톱'과 같은 식으로 노출을 더 주라는 분들도 계시는데,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보관된 기간보다는 보관된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테스트해보기 전에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필름이 여러 롤이라면 한 롤을 테스트해보고 나머지 롤을 찍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겠죠. 이런 필름들을 다량 판매하는 업자 혹은 개인이더라도 전문 판매자 같은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미리 테스트를 해보고 적정 권장 감도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오래되었더라도 냉장 혹은 냉동 등으로 보관이 아주 잘 되었다면 거의 제 감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출을 더 주어라'라고 하는 팁은 네거티브 필름에만 해당됩니다.

 

네거티브 필름은 노출을 더 주면 빛을 받은 부분의 상이 진하게 맺힙니다. 감도저하에 의한 노출부족이라는 건 상이 약하게 맺힌다는 거니까, 더 노출을 주면 상이 진해져서 보다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이렇게 해도 너무너무 변질이 심한 필름은 포깅이 완전히 진행되어 베이스 자체가 타버리는 경우도 있고, 감도저하가 너무 심해 상이 맺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강제로 노출을 더 주었더라도 각 색상별 유제층의 반응이 달라 정상적으로 발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색이 틀어진 것을 빈티지하다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는...)

 

그럼 슬라이드(포지티브positive 혹은 리버설reversal) 필름인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유통기한을 지나 변질된 슬라이드필름들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를 보시죠.

 

마젠타가 돌기 시작한 모습

현재 우리가 시장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슬라이드필름은 엑타크롬(ektarchrome) 입니다. 코다크롬(kodachrome)이 있었지만 이제는 필름도 구할 수 없고 현상도 되지 않죠. 엑타크롬의 특징들 중 하나가 암부쪽으로 마젠타의 경향을 띄기 쉽다는 점입니다. 많은 엑타크롬류의 필름들이 유제가 변질되기 시작하면 암부의 농도가 떨어지고 이게 마젠타를 띄는 원인이 됩니다.

 

좀더 변질돼서 암부에 확연한 마젠타가 띈다 

더 변질된 필름은 더 투명해집니다.

 

사진이 찍히지 않은 부분이어서 사실은 완전히 검게 보여야 하지만.

 

완전히 변질돼서, 완전히 투명해진 필름

 

이런 순서로 변질이 진행됩니다. 맨 아래 완전히 투명한 필름은 네거티브 필름의 경우라면 완전히 새카맣게 포그를 먹어 상이 구분되지 않는 필름인 경우와 같겠죠.

 

슬라이드필름은 베이스가 까맣게 나올 수 있어야 비로소 촬영한 상이 제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통기한을 지나 오래되어 변질되기 시작하면 베이스가 약해지기때문에 상이 약해보이게 되는 것이죠. 네거티브라면 노출을 더 주어 명부의 상을 진하게 맺히도록 해서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슬라이드는 투명한 부분이 명부이고 암부는 베이스 자체의 어두운 색이 담당해야 하는데, 이 베이스가 점차 투명해지기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되게 됩니다.

 

노출을 더 주면 그냥 상만 날아가버리게 되고 맙니다. 

 

위의 두번째 컷으로 노출을 더 준 경우로 시뮬레이션. 그냥 상만 날아가버린다.

노출을 더 준다고 베이스가 짙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통기한을 많이 지나 변질이 심해진 슬라이드필름이더라도 노출을 더 주어서는 안됩니다. 틀어지고 약해진 상은 일단 스캔한 다음 보정을 통해 살려내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감현상도 베이스를 진하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마찬가지 결과가 됩니다.

 

편법이 하나 있다면 크로스현상하는 것입니다. 슬라이드필름이지만 네거티브로 현상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는 경우엔 노출을 더 주는 것이 의미가 있어집니다.

 

만일 몇 롤을 가지고 있는데 한 롤 찍어보았더니 많이 변질되어 사진이 희미하게 나왔다면 원래의 감도보다 더 노출을 주고 네거티브로 크로스현상하는 것이 보다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일 수 있겠습니다. 얼마나 더 노출을 주어야 하는지 또한 테스트를 거친 다음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 엑타크롬 슬라이드들이 전부 유통기한을 지난다고 마젠타를 띄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필름들의 경우는 이렇게 녹색혹은 그밖의 이상한 색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유제층의 구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프로비아100F(RDP3)를 비롯한 몇몇 필름들은 녹색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