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17. 1. 17. 21:12

예전에 다음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입니다. 2008년쯤 작성된 글이라 과거시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2017년이니 내용들을 조금은 손보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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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십 년 전,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만화가들이 그려내는 '미래의 생활상' 같은 컷을 보면, 벽에 걸어놓고 보는 얇은 벽걸이 TV라든가, 얼굴을 보며 전화하는 화상전화라든가, 아침마다 자동으로 인쇄되어 나오는 신문이라든가... 하는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벽걸이 TV는 현실이 됐지만, 화상전화는 기술적으로는 현실이 됐음에도 보편화는 아직이고, 배달하지 않고 집집마다 자동으로 인쇄되어 나오는 신문은 현실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들 중 유독 신문만큼은 아직도 아침마다 문앞에 배달되어옵니다. 삼십 년 전 그대로의 그 방식 그대로입니다. 왜 그럴까요?

 

90년대에는 프린터 붐이 일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들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를 지나 잉크젯, 레이저 프린터가 나오면서 사무용 종이의 사용량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네트워크가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과 전자결재 시스템 등이 발달하면서 누군가 그랬습니다. '종이 신문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이죠. 컴퓨터에서 뉴스를 검색하고 보는 장점이 너무나 많으니 느리고 불편한 종이신문이 설 자리가 없어질 거란 예측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신문이 살아있습니다. 적어도 90년대보다는 컴퓨터도 훨씬 더 발달하고, 인터넷도 훨씬 빨라지고, 정보는 빠르고 넘쳐나는데도, 아침마다 천천히 소식을 전하는 종이 신문은, 주간월간 잡지들은, 종이에 인쇄된 매체들은, 죽지 않고(아니 심지어 더 늘기까지) 살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종이 인쇄물'들은 왜 안 죽을까요?

 

우리나라에 디지털 카메라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게 아마도 2000년대 이후인 걸로 기억합니다. 90년대 후반에도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지금처럼 즐길만한 성능과 가격의 카메라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건 그쯤 될 겁니다. 사실, 8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이 때는 우리나라에서도 '삼성항공' 등이 카메라를 만들어 전세계에 수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카메라들은 사진을 모르면 사진을 찍는 일 자체가 어려웠지만, 누구나 셔터만 누르면 사진이 나오는 '전자동'카메라들이 나오면서부터는 아무나, 정말 아무나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마도 "사진은 모른다, 찍기는 한다"라고들 했을 어르신들도, 애기엄마들도, 아이들도, 누구나 어깨에 조그만 카메라 하나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파인더을 들여다보고 줌을 밀고 당겨 구도를 잡은 뒤 셔터만 누르면, 노출이고 뭐고 나머지는 카메라가 다 해줬습니다. 의도는 반영하기 어려웠지만 실패하지는 않는 사진이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사진관에서는? '잘 나온 컷'들만 뽑아줬습니다. ^^;

 


포르쉐가 디자인했던 대박히트모델, 코끼리 카메라 4배줌, 케녹스 FX-4 

 


그때 그 카메라 삼성 퍼지줌 AF-SLIM

 

 

그러다 디지털 카메라 붐이 왔습니다. 좀 비싸긴 해도, 필름을 넣을 필요도 없고, 찍으면 바로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컴퓨터에서 인쇄하면 되고, 작고, 간단하고, 그리고 들고다니면 첨단으로 앞서가는 폼이 나는, 그렇게 편리할 수 없는  디지털 카메라, 디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백만 화소를 넘어 2백만, 3백만, 4백만...

 

디카는 처음에는 매니아들의 전유물이긴 했습니다. 첨단 디지털 기기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 아주머니, 어르신들은 한동안은 전자동 필카를 들고 여전히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하지만 점차 디카는 더 널리 보급되고, 놀이공원이나 여행지에서 그래도 꾸준히 보이던 그 전자동 필카들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마, 너무 앞서갔던 사람들은 거꾸로 다시 필름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모양입니다. 디카와 필카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달랐기 때문입니다. 디카를 만질만큼 만져본 사람들은 필카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아마도,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였던 것 같습니다. 집집마다 이제는 시들해서 장농에 보관되던 카메라들이 발굴(?)되어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이 발명되고, 개인들이 간편하게 사진을 찍게된 지 수십 년, 그동안 만들어진 수많은 카메라들, 클래식 카메라들이 다시 꺼내져 필름을 먹게 됐습니다. 다시 그렇게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과거의 전자동 카메라로 찍던 사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도 디카로 찍은 것처럼 컴퓨터로 즐기는 시대의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첨단 전자장비인 디카가 아니라 정말 기계적인 필카로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스캔해서 컴퓨터로 보고, 종이 사진으로 뽑아보는 재미에 사람들은 다시 푹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라면, 다시 완전히 세상을 뒤덮을만큼 널리 유행이 되지는 못할 거라는 예측입니다.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많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즐기는 비용은 점점 높아지고... 그래도 정말 즐기려는 사람들은 자꾸 줄어들 것 같습니다. 종이신문이 보여주는 생명력을 필름도 보여줄까요? 그렇기는 하겠습니다만.

 

 

그럼, 필름은 사라질까요?

 

네.. 사라지겠죠. 다만, 시간이 많이 걸려야 사라질 겁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수십 년 동안 생산된, 필름만 넣으면 멀쩡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수억, 혹은 수십억 대의 카메라들이 있고, 그 카메라들은 필름을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 찍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게 바로 '수요'가 됩니다.

 

게다가, 의아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도 필름카메라가 '새로' 생산됩니다. 니콘에서는 플래그십 필름카메라인 F6가 2004년에 나왔습니다. 라이카는 아직도 필름카메라를 신품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후지필름은 작고 매력적인 소형 필름카메라를 새로 새로 발매합니다. 일본의 코시나는 Voigtlander 상표를 달고 Bessa 필름카메라를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독일의 Zeiss Ikon은 코시나와 합작으로 새 필름카메라를 발표했습니다. Kenko는 중국에서 생산한 필름카메라를 내놨습니다. 러시아의 로모사는 로모 카메라를 계속 생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제품도 내놓습니다.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수많은 토이카메라들이 새로 나옵니다. 롤라이는 중형카메라인 Rolleflex를 현행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린호프는 617 포맷과 같은 명품 중형/대형카메라들을 새로 발매하고 있습니다. 후지필름과 코시나는 합작으로 6x7 포맷의 중형 폴딩 카메라를 새로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Seagull, Mudan과 같은 중형카메라, 장성과 같은 SLR, 그리고 필름을 사용하는 똑딱이 카메라들이 아직도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옥션이나 지마켓을 검색해보세요). 적어도 이 회사들은, 필름이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은 계속 생산되리라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도 안되면, 후지필름처럼 카메라도 생산하고 필름도 생산하는 방식을 취할지도요.

 

 


2009년에는 판매될 것 같은, 후지필름의  새 중형 폴딩 카메라 GF670

(2017년 코멘트: 이 카메라 발매돼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만 니콘의 F6이후의 필름카메라였어야 할 F7은 나오지 않았고, 코시나에서도 Zeiss에서도 새로운 필름카메라가 더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라이카에서는 몇 종류의 필름카메라들이 새로 나오긴 했네요. 로모는 새 필름카메라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 필름들이 나옵니다. 후지필름에서도 코닥에서도 새 필름들이 개발되어 판매됩니다. 물론 아그파는 경영난으로 다른 회사에 인수됐지만, 코니카도 그랬고 폴라로이드도 그랬고 포르테도 그랬지만, 그건 필름이 사라지는 수순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로 인한 경영상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 회사들이 넘어가면서 사라져 더는 나오지 않는 필름들이 많습니다. 그건 참 아쉽습니다.


(코닥은 파산보호신청단계를 거쳐 그동안 단종시켰던 슬라이드필름을 2017년 4/4분기에 다시 내놓는다고 합니다)

 

 


2009년 3월에 새로 발매한다는 후지필름의 '수퍼리아 프리미엄 400' 필름. 기대가 크다. 

(이 필름은 발매돼서 2017년 지금도 구할 수 있습니다.)

 

필름은 현재 일본, 미국, 유럽(영국, 헝가리, 체코, 크로아티아,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생산하고 있지 않지만,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필름을 보면, 필름의 생명력은 길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사실 옛날에는 유리판에 유제를 직접 손으로 발라 사진을 찍기도 했었으니까요.


(영국, 독일, 크로아티아 등에서는 필름을 만들고 있지만 이탈리아 러시아 체코 헝가리 등 많은 나라의 필름들이 사라졌네요.)

 


중국산 럭키 SHD100 흑백필름. 무척 저렴하다. 

(중국의 필름생산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다시 만들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필름은 사라질까요?

 

다시 답을 하자면, 아니오입니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살아계실 동안은, 필름은 발매될 겁니다. 디지털카메라가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즐기는 사람이 있을테니 말입니다. 취미와 레져활동은 편하게 즐기는 게 아니라 '사서 고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맛난 매운탕을 먹으려면 노량진에 가면 되지, 애써 낚시하러 갈 필요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필름카메라는 그 결과물이 디지털보다 무조건 더 좋아서 사용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과정이 디카보다 더 고생(!)스럽기때문에 즐기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비용이 들고, 귀찮고, 오래걸리고, 불편하고.... 하기 때문에 즐겨지는 겁니다. 게다가 디카에서는 못 느낄 그 '맛'이 따로 있음에 말입니다. 낚시하면서 느끼는 그 '손맛' 같은, MTB 를 타면서 느끼는 그 심장 터질 것 같은 짜릿함같은...

 

 

필름 안 사라집니다. 즐깁시다.


(네 당분간은 안 사라질 것 같습니다. 10년쯤 후인 2017년에도 더 많은 분들이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구요.)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7. 1. 17. 20:58


10년은 됐습니다만 '이루의 필름으로 찍는 사진' 1권을 2007년에 내고 그 책에 미처 싣지 못한 내용이라든가, 조금 보충하려던 것들이라든가 새로운 소식이라든가 가십이라든가 등등을 블로그에 조금 정리해두고 있었습니다. 여러 블로그 서비스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다음 블로그를 사용했었죠.


http://blog.daum.net/tyromin 이라는 주소였는데,


블로그가 그렇듯이 글을 올리고는 조금 두었다가 다시 들어가보곤 하는 기간이 조금씩 길어지다 보니 한두 달 못 들어가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골칫거리는 스팸이었는데 댓글로 스팸이 하도 달려서 지우고 차단하고 하는 게 주된 일이었습니다. 해킹을 당한 건 아니었는데 댓글때문이었는지 어느날 들어가보니 스팸신고로 블로그 컨텐츠가 차단되었다고 떠 있더군요. 해킹당한 거였으면 계정 자체가 다 털려서 여기저기 다른 카페나 등등도 가입하고 강퇴당하고 하는 일이 같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더니 날아가버렸어요.


글들도 죄다 날아갔죠.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는데..


워낙 많은 분들이 퍼가신 덕분에(-_-) 제가 써두었다가 소실된 글들을 일부 복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나둘 다시 퍼와보겠습니다. 후후후..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7. 1. 12. 22:07

오늘은 흑백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현상소에 현상과 스캔까지 의뢰하시는 분들 중 그 현상소가 후지필름의 기종을 사용하는 곳일 경우 자주 볼 수 있는 사진들의 경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FDI라고 하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고 있는 곳들이 대부분 후지필름의 기종을 사용하고 있는데, 국내에 들어온 대부분의 후지 기종들은 한국후지필름을 통해 공급된 것들입니다. 업소는 기계를 들여놓는 것만으로 운영하기는 어렵습니다. 설치도 해야 하고 교육도 받아야 하고 유지보수도 받아야 하고 특히나 인화지나 약품같은 자재들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고 거래해야 하기때문에 고정 거래를 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후지와 노리츠로 양분되는 국내 미니랩 장비들 중에서 보다 유리해보이는 조건과 사후관리를 제공하는 곳을 선택해야만 했었죠. 그래서 후지를 선택하면 FDI(Fujifilm Digital Imaging)라는 간판을 달 수 있었고 후지에서 장비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겁니다.


후지필름의 프론티어 미니랩 장비에 같이 보급된 필름스캐너들은 몇 가지 기종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최신(?)의 기종은 SP-3000 입니다. 이 기종은 135필름 및 120/220 등 중형 필름까지를 스캔할 수 있습니다. 135는 자동이지만 중형용은 일일이 한 컷씩 수동으로 작업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거꾸로 더욱 다양한 필름 판형들을 편법적으로 작업할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는 조금 구형인 SP-2000과 국내에는 거의 보급되지 않은 SP-2500같은 기종들도 있고, 135 전용으로 보급된 SP-500이나 SLP-800, SLP-1000과 같은 기종들도 더러 있습니다.


기종에 따라 작동하는 방식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같은 이미지 프로세싱 알고리즘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의 특성이나 품질은 거의 비슷합니다. 스캔 속도라든가 Dmax와 같은 기술적 스펙은 텍스트로 공개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시간당 몇 코마(몇 컷을 스캔해낸다)를 작업한다 정도의 스펙이 카탈로그에 공개돼 있을 뿐입니다.


일부에서는 'FDI에 맡기면 모든 필름이 다 FDI가 되어버린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후지의 스캐너가 그런 정도로 막장까지는 아닌데, 스캐너의 설정이라든가 혹은 장비를 운용하는 작업자(오퍼레이터)가 필름마다의 특성을 잘 살려내는 작업을 못한다거나(혹은 하지 않거나-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니까요) 하는 등의 이유로 '막스캔'된 결과물이 고객에게 그대로 제공되다 보면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이 후지필름의 스캐너는 흑백필름을 스캔할 때 결과물이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스캐너들은 그렇지 않은데 후지의 기종들은 특히나 원래는 '함께 시스템으로 붙어 있는 은염 레이저 인화장비'에 최적화된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이 스캐너들은 원래는 인화기와 한 덩어리로 되어 있고 따로 떨어뜨려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별도의 장비를 만들어 따로 떨어뜨려놓고 사용하게 개선이 되었습니다만. 그래서, 컬러필름은 물론이고 흑백필름도 레이저로 노광해서 약품처리되어 나오는 은염인화를 위한 중간결과물로서의 디지털 데이터를 뽑아내도록 되어 있던 것이죠.


컬러인화지로 흑백의 결과물을 작업하는 것을 크로모제닉(chromogenic) 인화라고 하는데요, 인터넷 인화사이트 같은 곳에 흑백 이미지를 보내 뽑아보신 분들은 어떤 경험들이 있으실 겁니다. 말하자면 완벽한 흑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이것이 바로 크로모제닉의 특성입니다.


어떤 경우는 불그레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푸르스름하기도 했을 겁니다. 컬러 캘리브레이션이 잘 잡힌 인화의 경우는 좀 덜하기는 한데, 그래도 형광등이나 실내등, 혹은 주광 등에 따라 붉게도 푸르게도 보이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로 컬러인화용 인화지로 흑백사진을 뽑았을 때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후지는 이런 점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흑백의 이미지를 컬러인화지에 인화하면 오히려 잡색이 돌게 된다는 점을 보완하려고 했죠.


실제로 순수한 그레이스케일을 크로모제닉으로 인화해보면 밝은 부분쪽은 약간 붉은 빛(마젠타)이 돌고 어두운 부분쪽은 푸른 빛(그린)이 돌게 됩니다. 그래서 후지는 흑백필름을 인화하려고 스캐너에 넣으면 그 인화용 데이터는 그 반대의 성향(암부는 마젠타, 명부는 그린)이 되도록 설계해놓았습니다.


그래서 후지의 스캐너로 스캔된 흑백필름의 이미지들은 흑백이 아니고 불그레 푸르레한 톤이 도는 컬러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죠.


전형적인 샘플 하나를 보시죠.



흑백이지만 암부쪽으로는 붉은 기운이 느껴지실 겁니다. 잘 모르시겠다구요? 아래의 사진을 보시죠. 같은 사진을 완전히 그레이스케일로 변환한 것입니다. 화면을 위아래로 스크롤해서 비교해보세요.



확연히 비교가 되시지요?


이렇게 붉고 푸른 톤을 넣은 흑백 스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데, 현상소에서는 이런 특성을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모르는 곳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합니다. 어떤 곳들은 완전한 흑백으로 만들어서 제공하기도 하고, 어떤 곳들은 그대로 제공하기도 하죠.


아무튼 화면에서 잡색이 도는 주로 불그레한 이미지들은 이것이 보통 흑백사진에서 많이들 일부러 작업하는 세피아 톤(부드럽고 미묘한 갈색톤을 일부러 넣은) 것과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가끔씩은 거슬리곤 합니다. 이 톤들은 좋은 흑백을 위해서가 아니라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크로모제닉 인화시의 잡색 보정용으로 들어간 미세한 톤들일 뿐이거든요.


만일 필름을 맡긴 현상소에서 받은 이미지가 완전한 흑백이 아닌 불그레 푸르레한 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이미지라면 웬만하면 완전한 흑백으로 변환해서 사용하시기를 추천해드립니다. 요즘은 잉크프린터같은 것들도 좋아져서 흑백이미지를 꽤 잘 인쇄해내는데, 그런 곳에 이 크로모제닉 보정톤이 들어간 불그레 푸르레 이미지를 사용하면 그 색들도 그대로 나오게 됩니다. 오히려 잡색이 끼게 되는 것이죠.


몇 장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위는 보정톤이 들어간 사진들, 아래는 그레이스케일들입니다.














완전히 흑백으로 만드는 방법은 그레이스케일로 변환, desaturate 등이 있습니다. 컬러필름을 스캔한 이미지나 컬러로 촬영된 디지털 이미지를 흑백으로 변환하려고 색을 뺄 때와 같은 심심한 톤이 되지는 않습니다. 원래의 흑백필름을 스캔한 이미지이거든요. 잡색만 빼는 작업이 됩니다. 물론 포토웍스나 포토스케이프와 같은 편리한 프로그램을 사용하셔도 전혀 무리가 없겠습니다.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7. 1. 6. 08:19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미국의 기업 코닥. 여러 해 전 국내 언론들은 '코닥이 망해서 사라졌다'는 식으로 기사를 전했습니다. 코닥은 경영난 끝에 2012년 '파산보호신청'을 미국 법원에 냈었고 그러기 전까지 구조조정을 진행중이었죠. 특허들을 내다 팔기도 했고, 돈이 안 되는 필름 생산 라인과 제품을 줄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슬라이드필름들도 그 희생양이었는데,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E100VS와 E100G 필름을 2012년 3월 1일에 단종시켰었습니다.


파산보호신청은 말하자면 법정관리같은 것이어서 파산하지 않도록 채권단으로부터 자산을 보호 동결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절차로 압니다. 그러니 경쟁력있는 부분만큼은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이죠.


파산보호기간을 거치면서 코닥은 몇 개의 회사들로 쪼개졌는데, 그 오랜 기간동안 코닥을 먹여 살렸던 아날로그 사진 부문(필름, 약품, 감광인화지 등등)은 영국자산공사 펀드가 인수하면서 코닥 알라리스(Kodak Alaris)라는 이름의 회사로 떨어져나갑니다. 좀 의외지만 영화용 필름은 미국 코닥에 남겨두었는데요, 아마도 유통과정이 달랐거나 했던 모양으로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조조정과 회생과정이 끝나고 시장수요만 있다면 코닥은 분명 슬라이드를 다시 생산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었습니다. 


http://irooo.tistory.com/19 


그리고 만 5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 무려 2017년 새해 벽두에 코닥은 엑타크롬 필름의 부활을 알려옵니다.



이 소식때문에 필름사진계는 난리네요. 실제로는 아직 필름이 발매된 것은 아니고, 2017년 4/4분기에나 판매될 것이라고 합니다. 135필름만 먼저 나올 것이라고도 하구요.


어쨌든, 코닥의 E100 시리즈를 그리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 필름으로 촬영된 사진을 다시 볼 생각을 하니 두근거림에 눈물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간밤에는 잠이 들었다가 새벽 4시에 문득 잠이 깨었는데, 괜히 열어본 페이지에서 이 만우절 기사같은 뉴스를 접하고 흥분해서 잠을 다 설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필름사진 시장의 확실한 부활입니다. 

필름 사진을 시작하고 즐기는 분들이 많아지고, 필름 카메라 가격들이 비싸지고, 아마츄어와 프로 할 것 없이 필름으로 촬영하는 절대 사진의 양이 늘어났습니다. 코닥도 자신들의 뉴스에서 최근 몇 년간 필름 판매량이 저점을 찍고 증가중이라는 발표를 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 엑타크롬 슬라이드의 재발매로 이것이 확실히 공인된 셈입니다.


- 새로운 필름들이 더 나올 것 같습니다.

코닥이 망해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셨던 것은 오해입니다. 코닥은 여전히 필름사진 시장의 거목이었습니다. 코닥이 이렇게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하면 후지를 비롯한 다른 메이커들도 대응하게 마련입니다. 필름사진 시장이 비록 코딱지만해졌을지는 모르지만, 그 코딱지들은 매우매우 영양가가 높고 마진이 큰 부분이어서 그냥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못할 겁니다. 특히나 코닥과 후지가 아닌 다른 제조사들의 행보가 빨라질 것 같습니다.


- 필름사진의 수명이 연장됐습니다.

코닥이 슬라이드를 접고 후지도 하나둘 접고 이제 판매되는 슬라이드는 벨비아50과 100밖에는 남지 않았었습니다. 심지어 코닥의 경우는 슬라이드 현상약품마저 구할 수 없게 되었었습니다. 비관론과 긍정론이 공존했었지만 비관적으로 보자면 슬라이드 필름은 앞으로 5년 혹은 길어도 10년이면 더는 생산되지 않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군소메이커가 필름을 만들어도 현상약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니까요. 아그파에서 CT100을 내놓고 마코에서 롤라이 이름으로 조금은 만들어 냅니다만 현상약품은 공급하지 않으니까요. 이제 이번 엑타크롬 재생산으로 이런 걱정이 당분간 사라지게 됐습니다.


- 그밖의 분야들도 혹시...

새로운 필름카메라도 발표될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하이엔드 P&S 카메라들의 수요와 가격이 장난이 아닙니다. 덩달아 다른 카메라들도 가격이 뜁니다. 수리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합니다. 다시 필름을 취급하는 현상소들도 더 생겨날 것 같습니다. 필름사진을 취급하는 온라인 미디어, 채널, SNS도 더 생겨날 것 같습니다.



얼른 나왔으면 좋겠네요. 얼른 써보고 현상해보고 스캔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네요.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6. 11. 13. 21:28

오랜만에 뭔가 글다운 글을 써보네요. 이렇게 저렇게 일을 계속하다보니 이제는 상업 현상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두 기종, 노리츠의 스캐너들과 후지필름의 SP-3000을 모두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만(아마도) 사용하고 있는 코닥 랩스캐너의 결과물도 함께 비교해보려 합니다.


노리츠든 후지필름('후지'라고들 부르지만 정식 회사이름은 '후지필름'입니다. 아래에서는 그냥 후지라고만 하겠습니다)이든 이제는 이런 장비들을 더 개발하거나 시판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더 좋은 기종들이 나올 일이 없다는 얘기죠. 여러분이 현상소에 비용을 지불하고 현상과 스캔 서비스를 받으면 대부분 이 두 종류의 스캐너를 이용한 서비스를 받게 될 겁니다. 간혹 조금 다른 기종을 사용하는 곳들도 있을테지만 크게 찾아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필름 스캐너는 결과물도 결과물이지만 속도가 생명이니까요. 필름사진을 찍는 분들의 숫자가 요즘 들어 조금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가정이나 일터에 필름스캐너를 보유해서 간혹 장터나 등등에 '스캔해드릴게요'하고 글을 올리는 분들이나 혹은 새로 필름스캔 서비스를 하겠다고 진입하는 업체들이 보입니다. 


개인이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캐너들로는 니콘의 쿨스캔 시리즈나 엡손, 캐논, hp, 플러스텍, 마이크로텍, 옵틱필름 등의 기종들이 있고 일부는 단종도 되었죠. 개인용 스캐너들은 충분한 품질은 보여주지만 스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품(사람이 옆에 붙어서 계속 작업해야 한다든가..)이 많이 들어서 투자하는 노력 대비 기대 매출액이 무척 작은 편입니다. 한마디로 받는 돈에 비해 너무 고되지요. 업소용 현상장비를 갖추고 업소용 스캐너를 갖추면 현상소가 되는 거지만, 필름 현상의 품질 관리나 이제는 노후된 현상장비와 스캐너들의 관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약품의 공급과 폐수처리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개인이 하기는 어렵습니다.


업소용 스캐너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오퍼레이터들이 기본적 조작법 정도만 숙지할 뿐이고 세세한 튜닝은 어렵다는 겁니다. 국내에 미니랩(현상소에서 사용하는 현상기-스캐너-인화기를 합쳐 미니랩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장비들을 공급하는 업체들 역시 이런 부분에 전문적이지 않습니다. 실제 사용하고 있는 업소에서 스스로 튜닝해야 하는데, 기술지원이나 매뉴얼 같은 것들도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스캔 퀄리티를 좌우할 튜닝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대충의 결과물은 나와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상소에 따라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하는 일을 '단순작업'으로 보고 오랜 경험이나 튜닝에 익숙하지 않은 말단 직원(알바생 등..)에게 맡기는 경우가 꽤 있어서, 책임있는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실제로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하는 단순 기계적 조작만은 한두 시간 정도의 교육이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관광지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맡기면서 '이거 누르면 찍힙니다 저희 좀 찍어주세요'하고 카메라를 맡길 때의 그 조작법은 단 몇 초면 알려줄 수 있기도 하죠.


아무튼, 노리츠와 후지와 코닥의 결과물을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캐너에 넣어보니 단순히 이렇다더라가 아니라 조금 더 상세한 비교를 진행하겠습니다. 노리츠에도 여러 기종들이 있고 후지필름에도 몇몇 기종들이 있는데 결과물의 경향은 대동소이합니다. 실제로 비교해봐도 각 기종들마다 지원하는 필름들의 포맷이나 속도 등에만 차이가 있고 결과물은 엇비슷합니다.


일단 사용한 필름은 이제는 가장 보편적인 저가형(이지만 매우 괜찮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필름인 후지의 c200 입니다.


롤 전체 중 24컷을 섬네일로 비교해보겠습니다. 대략의 경향이 보일 겁니다.


(이미지들은 눌러보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후지필름의 기종으로 스캔된 롤의 섬네일들입니다.




이건 노리츠 장비로 스캔된 롤의 섬네일들이구요. 위의 후지필름과 꽤 차이를 보입니다.




코닥으로 스캔된 섬네일입니다. 또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 작은 섬네일들에서는 '선명도'는 보지 마시고 색감의 차이만 보시기 바랍니다. 스캐너의 튜닝이나 스캔할 때의 조정으로 조금은 수정할 수 있지만 스캐너 기종간의 차이를 완전히 없애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 세 결과물들은 일단 오퍼레이터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각 스캐너가 가진 결과물의 특성을 많이 살려놓은 것들입니다. 그래야 스캐너간 비교가 가능하니까요.


스캐너는 필름의 상을 읽어들여 분석하고, 알고리즘을 적용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읽어들이는 광학적 메커니즘이 가진 성능과 정밀성, 그리고 알고리즘과 이미지 프로세싱 루틴에 따라 같은 필름이라도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기도 한 거죠. 스캐너의 이런 작동은 한 컷 한 컷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스캐너는 촬영할 때의 상황을 알지 못합니다. 또 어떤 카메라로 촬영됐는지도 모르죠. 촬영자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의도로 찍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스캐너가 알 수 있는 것은 필름의 베이스 색상과 농도, 그리고 컷 단위로 읽어들여 분석할 수 있는 상 뿐입니다. 스캐너는 읽어들인 한 컷의 이미지를 반전하고, 히스토그램 등의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을 분석하고 상을 반전하고 색상을 잡아냅니다. 그리고 마치 디지털카메라에 내장된 것과 비슷한 이미지프로세싱을 거쳐 jpg와 같은 실제 이미지로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무언가 필름 고유의 색이나 노출을 원해서 '무보정으로 스캔해주세요'라고 요청하더라도 스캐너가 이미 컷 단위로 보정해버리는 결과물에서부터 출발하기때문에, 오퍼레이터가 손대지 않고 기계에서 나오는 대로 저장하더라도 큰 의미를 보장하지는 못하게 됩니다.


섬네일에서 보이는 롤 단위의 색상의 경향은 노리츠의 스캐너가 가장 노르스름하고 코닥이 가장 덜 노랗네요. 후지는 그 중간쯤으로 보입니다. 색은 그렇습니다. 물론 튜닝이 가능하지만 이런 경향은 아마도 노리츠의 스캐너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현상소를 이용해오신 많은 분들이 그동안 이미 느끼셨을 겁니다.


어쨌든 현상소를 이용하는 고객의 입장이라면 그 장비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어떻게 조작하는지 이런 건 알 필요가 없습니다. 고객에게는 결과물만 제공되니까요. 그렇다면 중요한 건 속도가 빠르니 작업이 편하니 이런 게 아니라 이미지의 품질입니다.


롤 단위 스캔의 경향은 보았으니 한 컷 한 컷의 특성을 살펴보아야겠죠.


맨 첫 컷 하나를 먼저 보겠습니다.


순서대로 노리츠/후지/코닥입니다.


일단 후지가 화면을 가장 많이 크롭하고 들어왔네요. 화면 중앙쯤의 열매, 우측 상단의 나뭇가지를 보면 많이 잘라먹고 들어왔는지 아닌지가 비교됩니다.


단 한 컷을 놓고도 세 기종이 아주 많이 다릅니다. 물론 어떤 것이 취향에 맞으실지는 한 컷만을 놓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중간의 후지 결과물은 장비 디폴트로는 훨씬 밝게 나왔습니다. 세 컷을 비교하면서 비슷해 보이라고 조정을 했네요. 암부가 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명부가 떠 있어요. 위의 세 컷 비교는 단순 밝기만 어둡게 해서 비교했습니다.


왼쪽이 후지의 디폴트 결과물입니다. 매 컷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컷마다 또 다릅니다. 스캐너 알고리즘의 차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퍼레이터는 이렇게 스캔된 컷을 모니터로 보면서 조정하게 됩니다. 다른 비교할 수 있는 사진이 없으므로 이 사진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넘어갑니다. 만일 너무 밝거나 어둡거나 하다면 밝기를 올리거나 낮추겠죠.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CMY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건 그나마 성의있게 작업하는 오퍼레이터일 경우입니다. 한 컷 한 컷 확인하면서 조절해주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므로 가격에 포함되고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니까요.













한 컷만 놓고 뭘 얘기하기는 그러니까, 여러 컷 같이 더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조정하지 않고 그대로 세 컷을 나열해보겠습니다. 스캐너 디폴트의 특성도 봐야 하니까요.



좌에서 우로 노리츠-후지-코닥, 위에서 아래로 노리츠-후지-코닥의 순서입니다.



아래로는 가로사진이라 조금 크게 보입니다. 비교하기 좋긴 한데 스크롤을 해봐야 하네요.





물론 제가 테스트에 사용한 기종들의 튜닝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노리츠는 채도가 높고 후지는 컨트라스트가 조금 더 강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후지는 대체로 명부쪽이 날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리츠가 전반적으로 더 누리끼리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이네요. 


다시 한 번 꼭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스캐너 튜닝으로 일부분, 그리고 작업중에 오퍼레이터의 정성에 의해 일부분 더 좋아지거나 혹은 달라지거나 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노리츠의 채도나 노란 기운은 튜닝이나 오퍼레이터의 조절에 의해 조금 덜하거나 달라질 수도 있고, 후지의 날아간 명부도 맨 첫 컷에서 보셨던 것처럼 밝기를 조절해서 낮출 수 있다는 것이죠. 


세 기종의 스캐너 모두 롤스캔(36컷의 필름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스캔)을 지원하기때문에 약간씩 좌우 상하로 크롭이 됩니다. 현실적으로 100퍼센트를 다 스캔해내기는 어렵죠. 게다가 상업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라면 좌우나 상하에 검은 여백(네거티브라서 검은 색이 됩니다)이 생기도록 밀리게 스캔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오차율에 의한 에러를 줄이기 위해 100%에서 조금은 테두리를 버리도록 만들어져 있기도 합니다.


어떤 쪽이 취향에 맞으실지는 뭐.. 이 몇몇 컷들만으로도 판단이 안 되실 겁니다. 어쨌든 색감이나 컷간의 특성들에 대한 것들은 이만큼 보구요, 실제 이미지 디테일의 특성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이미지의 디테일이란 것은, 이미지 한 컷 한 컷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것입니다. 색감이 노랗다거나 채도가 높다거나 조금 밝게 나왔다거나 명부나 암부가 날아가고 죽었다거나 하는 것 뿐만아니라 계조, 색정보를 비롯해서 그레인패턴, 샤프니스 같은 것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계조나 색정보와 같은 것들은 뒤에서 '보정가능폭'을 가늠해보는 꼭지에서 살펴보구요.


비교하기 좋은 이미지 한 컷의 명부와 암부를 100%(실제 이미지 크기)로 크롭해서 보겠습니다. 세 기종 모두 고해상도(3100x2060)에 가까운 이미지로 맞추어 스캔하고 크롭했습니다.


이 부분과 이 부분을 크롭해서 비교해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좌에서 우로 노리츠-후지-코닥 순서입니다.


노리츠는 선명한 듯 보이지만 입자감이 도드라지고 후지는 확실히 채도가 떨어집니다. 명부만 봐서는 노리츠의 계조가 나아보이지만 중간톤은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암부를 보면 후지보다는 노리츠가 나아보입니다. 하지만 오른쪽의 코닥에 비해서는 둘 다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거의 코닥의 압승입니다. 디테일이나 샤프니스도 코닥이 압도적으로 좋습니다.(제가 코닥을 선택하고 메인으로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노리츠의 스캐너는 이렇게 모래알을 뿌려놓은 듯한 입자들을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필름이 그런 그레인(입자)을 가졌다기보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프로세싱 과정에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저해상도로 스캔했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노리츠 스캐너는 더 고해상도로 스캔해서 작게 리사이즈하면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입자들이 작게 리사이즈되면서 줄어드니까 좋아질 수밖에 없겠죠.


그럼 이 이미지들이 실제로 보정을 가했을 때 어떻게 적응하는지, 보정폭을 보겠습니다.


명부를 끌어 내렸을 때입니다.


노리츠의 경우 입자는 거칠지만 디테일은 잘 표현되는데 채도가 높아 그 부분으로는 계조가 포화되어 깨집니다. 하지만 명부 자체, 토끼 귀쪽으로 계조 표현은 후지보다 훨씬 좋네요. 후지는 채도가 조금 낮고 물빠진 듯한 부분이 있지만 일견 부드럽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암부를 끌어올렸을 때입니다.


역시 후지보다는 노리츠가 계조표현과 샤프니스가 나아보입니다. 후지는 완전히 죽은 부분의 채도가 너무 낮아 디테일조차 없네요.


두 비교 모두에서 예상했던 것처럼 나머지 두 기종에 비해 코닥은 비교대상이 아닐 정도로 좋습니다. 스캔받은 이미지를 어떻게 만지더라도 코닥의 이미지는 더 잘 반응해줄 겁니다.


참, 모든 기종에서 이미지는 8bit jpg, 색공간은 srgb였습니다.


처음 비교글을 작성하려고 했을 때는 데스크톱의 포토샵이나 라이트룸 뿐만아니라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스냅시드나 라이트룸과 같이 프리셋이나 필터를 이용하는 리터칭 어플을 이용할 경우의 보정폭에 대해서도 비교를 하려고 했지만 이 결과물만 놓고도 충분하다 싶어 굳이 해보지는 않겠습니다. 밝기 조절이나 색감 조절 뿐만아니라 필터를 이용할 경우에도 후지보다는 노리츠가 조금 더 좋고, 그것들보다는 코닥이 월등히 좋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제 위로 다시 올라가서, 색감을 비교하려고 보았던 이미지들의 명부와 암부를 같이 비교해보시면 세 기종의 차이가 보이실 겁니다.


"나는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스캔받으면 따로 보정하지 않는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시작부분에서 이야기했듯이 스캐너의 알고리즘에서 이미 컷마다 달라집니다. 어떤 스캐너를 사용하고, 어떻게 세팅/튜닝되어 있고, 오퍼레이터가 어떻게 만져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캔받은 후에 전혀 보정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밝기 정도만 조금 조절한다는 경우라면 어떤 기종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런 경우라면 취향에 따라 어떤 현상소가 어떤 기종을 사용하는지 확인하고 맡길 필요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세팅/튜닝이나 오퍼레이터의 작업 차이에 따라 또 달라지므로 결과물은 일단 맡겨서 확인한 다음에 판단해야 하겠죠.


반복하자면 스캐너나 작업자는 촬영당시의 상황을 모르고, 촬영자가 어떤 의도로 컷을 담았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기계는 기계가 가진 알고리즘에 따라 루틴을 돌아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되고, 작업자는 기계가 일단 만들어 놓은 사진을 보고 어떤 장면인지, 촬영자는 어떤 생각으로 컷을 담았을지 거꾸로 유추하게 됩니다. 작업자는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계가 만들어놓은 컷보다 사진에 찍힌 인물의 얼굴을 조금 더 밝고 생기있게 만들기도 하고, 기계가 만들어놓은 것보다 석양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하늘을 더 파랗게도 하고, 컨트라스트나 채도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작업자가 만들어 내놓는 '그래도 인간의 지능을 조금은 가미한' 결과물은 예상되는 피사체가 더 잘 나오게, 장면은 조금 더 극적이도록, 아니면 암부나 명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가능한 양쪽 모두를 최대한 담고 있도록 조절하는 정도여야 할 것입니다. 작업자의 이런 손길은 어느 현상소에서나 행할 수 있지만 어느 곳에서나 시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컷 한 컷 확인하고 작업하는 작업자의 숙련도와 정성, 그리고 들이는 공과 시간 또한 비용이기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곳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불어 일단 스캔된 이미지를 다시 보정까지 해서 내놓는 곳은 더욱 찾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필름을 찍어 현상 스캔을 맡겼는데 얼굴이 그늘지고 어둡게 나와서 좀 밝게 하려고 했더니 잘 안 되더라.. 아니면 밝게 해도 무리가 없더라의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소에서 만들어준(혹은 거의 기계 디폴트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사진이 내 취향에 잘 맞아서, 혹은 그게 필름사진이고 느낌이 좋아서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라면 그대로 사용해도 좋겠지요.


업소용 세 기종만을 비교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리고 '롤스캔'이 가능한 기종들만을 대상으로 삼았기에 니콘이나 엡손의 스캐너, 옵틱필름의 스캐너, 그리고 끝판왕이라고들 하는 핫셀블라드의 이마콘(플렉스타이트) 스캐너는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덧붙임 2018.3.7: 이 글은 2016년11월에 작성된 것으로, 당시의 세 기종의 튜닝상태를 보여줍니다. 노리츠 스캐너라고 무조건 노랗게 나오지 않으며 그것은 사용자의 튜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노리츠 기종은 후지의 기종들보다 튜닝 자유도가 높아 매우 다른 스타일과 컬러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 2018년 현재는 노리츠와 코닥 모두 위의 비교와는 좀더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게 튜닝 및 조정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6. 9. 3. 18:04

80년대 CGA 혹은 모노크롬 시절에는 14인치 15인치 정도의 CRT 모니터면 훌륭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개인용 데스크탑에서도 30인치 이상의 모니터들을 쓰고 있죠. 4K니 5K니 하면서 해상도도 더 높아진 것들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이 광학적인 부분 뿐만아니라 감성적 분해능까지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는 300dpi 이상까지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데(실제로 1000dpi로 인쇄된 활자와 2000dpi로 인쇄된 활자의 차이를 육안으로도 느낄 수 있지요) 애플이 '레티나'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면서 '이 정도면 충분함'이라고 선언한 해상도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세밀한 집적도를 가진 모니터들이 나오면 그 이후에는 뭔가 다른 걸로 더 승부를 보려고 하겠죠.

40인치, 400dpi 정도면 대략 16,000 픽셀 정도의 모니터가 나와야 합니다. 세로로는 25인치쯤 될 테니까 9천에서 1만픽셀 정도 되겠네요. 그러면 가로세로 곱해서 대략 1억6천만화소 정도가 됩니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디지털카메라의 화소경쟁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예측해보려구요.

하이엔드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렌즈교환식 SLR 혹은 미러리스(중형포맷 포함)의 최대 유효화소 기종들이 5천만화소쯤까지 왔더군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기는 한데, 1만6천x1만 픽셀의 모니터에서는 100%로 표시해도 화면의 1/3 정도도 못 채웁니다. 실제로는 크롭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촬영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의 최대 사이즈는 모니터의 유효 픽셀 수보다 더 커야겠죠.

모니터가 1억6천만화소라면 이미지는 2억화소 정도는 필요할 겁니다. 이쯤이면, 40x60인치의 프린트를 실제 300dpi로 뽑는 데 필요한 12,000x18,000 픽셀의 이미지가 실제 물리적으로 뻥튀기를 거치지 않고도 1:1로 존재하게 되는 셈이죠.

이런 이미지의 비트맵 사이즈는 12,000x18,000x48비트 = 12억9천6백만 바이트, 한 컷당 1.2GB가 넘는군요. 물론 효율적으로 압축하고 풀어내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러려면 또 전송속도, 저장공간과 어마어마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할 겁니다.

아직도 한참 더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네요. 그런데 언젠가 드디어 일단 저만큼 다 발전하고 나면..

그 뒤에는 뭐가 있을까요. 그건 조금 궁금하기는 합니다.

그 때까지 살 수는 있을까 모르겠네요.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5. 2. 15. 11:25

죽으면 빈소 앞에 올려질 사진, 영정 사진.


미리 준비해두면 고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살다보면 대개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생겨난 게 '영정사진 촬영 봉사'활동인데, 참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그 나이쯤 되면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당신 죽으면 이 사진 쓰라고 미리 찍어주는 건 어쩌면 어서 죽으라는 얘기 같기도 하고, 젊고 이쁠 때 사진도 아니고 이제 다 늙어 꼬부라졌는데 와서 당신 죽으면 걸어둘 사진 찍어준다니 섭섭할만도 한데.


그 나이가 되어서 그런 상황에서 봉사를 받아보지 않아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 봉사를 하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게들 좋아라 하신다고.


그리고 언제부턴가 '영정사진'이라는 말 대신 살아 생전에 즐겁게 찍는 사진을 '장수사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런 복잡미묘할만한 간극을 잘 메워주는 용어 선택이기도 한 것 같고.


'하루라도 젊고 예쁘실 때 미리 잘 찍어두시면 좋잖아요'


내 경험으로도 이 말 싫어하는 어르신들은 한 분도 안 계셨던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게 아니라 어쩌면 지금 당장일지도 모른다. 셀카봉 들고 selfie 찍는 거 얘기가 아니고, 사진에 사람들을 담자.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5. 2. 14. 11:24




 2014년, 작년 1월의 어느날 현상사고가 났습니다. 원인은 기계 안의 라크(lack)를 구동시키는 벨트가 끊어진 거였습니다. 후지

필름의 컬러네거티브필름 자동현상기들은 필름 이송을 전용의 벨트를 이용해서 하게 되어 있는데, 이 벨트가 독한 약품속에서 오래 돌아가다보면 삭아서 끊어지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이 기계는 이미 단종된 지 수 년 이상 지나고 소모품(이 벨트는 그래서 소모품입니다)은 더는 만들어지거나 공급되지 않아 구할 수 없어서, 최대한 버텨본다고 국내의 나까마(현상장비들을 유통하는 업자분들을 그렇게 부릅니다)를 통해 중고기계들이 매물로 나올 때마다 매입해서 기계는 해체하고 중요 부품들만 쟁여놓곤 했었는데 새 벨트가 아니고 쓰던 부품들이라 이미 어느 정도는 삭아 있어서, 갈아끼워도 오래 못 버티곤 했던 겁니다. 1월에 끊어져서 마지막 벨트로 갈았는데, 마지막으로 갈던 그 벨트도 이미 오래 쓰지는 못할 상태였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장비 교체를 결정했었고 드디어 2월 14일에 실행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수만 롤의 필름들을 현상하느라 무척이나 고생이 많았을 이 현상기는 수리할 부품이 없어서 다른 곳에서도 사용할 수가 없었기에, 팔려나가는 신세조차도 안 되고 그저 고철이 되어 실려나갔습니다. 들어올 때는 비싼 몸이셨지만 나갈 때는 치워달라고 비용을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돌아보면 아날로그 사진처리 업계가 다 그렇습니다. 장비들은 노후되었고 수리할 수는 없거나 하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셈이지요.


물론 자동으로 처리하는 이런 장비들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못할 것은 없을 겁니다. 손으로 하면 되니까요. 아날로그니까요.


2014년 발렌타인데이의 추억.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4. 3. 27. 20:41

겨우 한 달여 만에 '저작권 침해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예상했던 판결이고.


그리고...


대한항공의 의뢰와 취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유사한 사진을 싸게 사용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며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대한항공을 비난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유명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시안을 받아봤는데 본견적이 너무 비싸서 그 시안을 넘겨주고 무명의 디자이너에게 품삯만 받고 흡사한 디자인을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다는 모 기업의 예와 유사한데.

풍경에는 누구에게도 선점할 권리나 저작권이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풍경을 찍은 사진에는 저작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문제는 누구나 유사한 풍경을 찍을 수 있다는 점. 이 부분의 저작권과 유사성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결국은 이 소송의 쟁점이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온라인에 만연한 사진 도용(이라고 하면 좀 세겠지만, 출처를 모르는 이미지를 가져다가 SNS에 올리는 것도 사실 비슷한 것이라 할수도)의 경우 원본 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이 사진이 내 사진이다'를 증명하면 그에 대한 권리 등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비슷한 사진을 사용해서 벌어질 수도 있는 해프닝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내 사진하고 똑같은 다른 사진일 수도 있는 것.

같은 포인트에서 같은 화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풍경을 담으면 사진은 얼마나 달라질까. 어떤 사진적 기법으로 다른 사람은 모방할 수 없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촬영전의 상황, 촬영에서의 기법과 노력, 이후의 이미징과 리터칭으로 이미 수없이 유사한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 풍경사진은 그러면, '유사함만으로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분야가 되어버려야 마땅한 것일까.

혹 어쩌면 케나는 스스로 자신의 저작권 혹은 타인의 모작으로 인해 자신의 독창성이 침해당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그것을 어떤 권리로 주장하는 것의 말도 안됨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도 무엇인가 어떤 보호받고 싶고 또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역설하고 싶은 건 아닐까.

사진과 사진가의 권리에 대해 사진가들이 지켜야 할 상황에서 거꾸로 사진가와 사진가 사이의 어떤 가치에 대한 권리다툼 사이에서 이쪽 사진가들과 저쪽 사진가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지켜져야 할 어떤 가치의 정립(그것이 아무리 허공을 헤짚는 듯한 공허한 것처럼 보일지라도)에 노력을 기울이려는 자세보다는 '그런 류의 사진에는 저작권이란 없다'는 짧은 단정을 해내는 많은 판단들을 보면서(심지어 나조차도) 사진과 사진가의 권리란 어쩌면 이렇게 요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사진에 대해 내가 가진 권리는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까 하는.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4. 3. 22. 15:03

사실 2007년에 나온 '이루의 필름으로 찍는 사진' 1권이 절판된 건 벌써 한 2년은 됐습니다. 시중 서점들에서 모두 품절되어 구할 수 없었지만 출판사에서는 다시 인쇄하지 못했던 거죠. 인쇄해서 다 판매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ㅠㅠ


3쇄인가 4쇄를 완판했으니 얼추 1만권 정도 팔린 것 같습니다. 정확한 수량은 저도 몰라요. 마지막 인세 정산은 못 받았네요. 엄중하게 요구해서 받으면 받을 수 있겠지만 출판사(뿐만아니라 요즘 출판계 자체가..)쪽 사정도 좋지 않은 것 같구요.


어쨌거나 그간 여러 차례 '언제 다시 인쇄될까요..'를 물어봤었는데 드디어(?) 더는 인쇄할 계획이 없고, 저자가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라도 원고를 사용해도 된다는 합의를 보았습니다.


어떻게 활용할까 싶었는데..


다시 책의 형태로 만들어볼까, 이북의 형태로 만들어볼까 어쩔까 하다가 블로그를 통해서 핵심내용들을 공개하고 앞으로도 업데이트해나가는 게 가장 관리도 쉽고 마땅하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씩 움직여보기로 했습니다.



기대는 많이 하지 마셔요.. ㅋㅋ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