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24. 7. 1. 01:32

 

 

오랜만에 카메라 이야기를 써 봅니다. 새로 나올 카메라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잠시 만져보고 딱 한 롤 찍어본 소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디지털카메라들이 세상을 주름잡던 2000~2020년대까지도 필름카메라들이 개발되고 생산되어 판매되었었습니다. 캐논은 2018년이 되어서야 EOS-1v와 EOS-30v를 단종시켰고 니콘은 2020년에 들어서야 F6의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생산은 훨씬 더 이전이었을테고 재고판매의 종료였겠지만, 그 때까지도 신품 필름카메라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캐논이나 니콘이라는 일본의 대중적 브랜드 외에도 실은 후지필름도 GF670이라는 중형필름 카메라를 2014년까지, 일본의 코시나도 Voigtlander나 ZeissIkon 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만들어내고 판매했습니다. 명품카메라 브랜드인 독일의 라이카는 M7과 MP 그리고 M-A를 판매, 2022년에는 M6를 복각해내기도 했고, 그 중 MP는 2024년 현재에도 신품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는 일회용카메라, 그리고 토이카메라라고 불리는 간단한 메커니즘을 가진 플라스틱 다회용 카메라류가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죠.

 

하지만 새로이 설계되고 개발되는 신모델이 등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AI가 등장해서 인간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한 21세기 하고도 20년도 지난,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새로운 필름카메라를 만들겠다!는 발표가 일본에서 나옵니다.

 

펜탁스 Pentax는 일본을 대표하는 카메라 브랜드였지만 2008년 호야 HOYA에 인수되었다가 다시 2011년 리코 Ricoh에 인수합병되었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는 리코보다 펜탁스가 더 인지도 있는 브랜드였기때문에 리코가 펜탁스를 인수했을 때 적잖이 놀랐었는데요, 사실 리코도 GR이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유명기업이었죠.

 

회사들의 역사나 자료에 대해서는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생략하구요.

 

이 리코가 펜탁스 브랜드로 새 필름카메라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아사히펜탁스로 여러 시대를 풍미했고 깊고 넓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필름시대의 향수를 적극 이용하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번 두루뭉술한 소식들이 유출(?)되거나 티저가 발표되면서 궁금증을 더해갔습니다. 정말 만드는 거야? 혹시 시장 반응을 보려고 떠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몇 달 간격으로 티저가 발표되면서 진짜 만드는구나 하는 확신들을 갖게 되었고 이윽고 몇 가지 구체적인 내용들이 밝혀지면서 기대와 실망이 오가게 되었습니다.

 

- 풀프레임이 아닌 하프판형일 것이다

- 풀사이즈의 SLR이나 레인지파인더가 아니라 P&S일 것이다

- 오토포커스가 아니라 목측식일 것이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2020년대라면 필름카메라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최신 기술들을 다 넣어 엄청난 모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다들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저 사양과 기능으로 지금의 디지털카메라나 혹은 심지어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맞짱뜰 수 있다고?

 

그리고 지난 달, 실물의 모습이 유출되었습니다. 보통 유출은 비공식 사전 실물공개를 통한 홍보작전의 일환으로 느껴지는 게 대부분인데, 이 유출은 진짜 유출이었던 듯한 충격적인 비쥬얼이었어요.

 

 

 

 

 

 

 

 

새로 개발되어 나오는 카메라에 대한 기대는 뭐랄까, 최신의 그 무엇이었으면 했는데, 크기도 작지 않아 보이고 재질은 플라스틱처럼 보이고, 양쪽으로 갈라놓은 파인더의 기괴한 모습, 둥글게 튀어나온 그립부, 세련되어보이지도 않고 어중간해 보이는 바디라인, 3.5라는 아쉬운 밝기... 이 사진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6월16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실제 제품이 공개됩니다. 많은 의구심들이 해소되는 순간이었어요.

 

 

 

유출된 사진이 너무 포토제닉하지 않아서 생겼던 오해였달까요. 오히려 너무도 클래식한 디자인의 상판을 포함한 전체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다시 구매욕을 가지게 되신 것 같습니다.

 

저에겐 꽤나 멋지고 괜찮아보입니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판매에 돌입하면서, 초기 주문수량이 생산량보다 너무 많아서 며칠만에 주문예약을 닫고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미국내 판매가격은 499.99달러, 환율을 대충 1400이라고 하면 70만원 가량인데 어쩌면 정말 무리하지 않은 적당한 가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례로 볼 때 제가 예상하는 국내 판매가는 85만~95만원 사이 정도일 것 같습니다. 아님말구)

 

실은 전세계 대상 발표 및 판매가 개시되던 6월16일 이전에 이미 한국에 초호 테스트기가 들어와 있었고 수입사인 세기P&C에서 촬영하셨던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해보았었습니다만, 엠바고 때문에 발설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략의 화질,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정도였죠. 그리고 아직도 국내 판매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만, 지난 주초에 전시품이 진열되어 직접 만져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테스트 촬영을 위한 대여는 불가능했는데, 일본 펜탁스에서 직접 직원이 방한하여 같이 미팅을 가지면서 테스트 촬영을 위한 대여를 부탁드렸고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필름 한두 롤 정도는 찍어볼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멀리는 못 가고 충무로 일대를 한바퀴..

 

내심 컬러, 흑백을 다 찍어보고 싶었는데 70여 컷 속사 촬영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ㅎㅎㅎ 결국 컬러필름 1롤만 촬영완료하고 반납했습니다.

 

촬영에는 포트라 400을 사용했습니다만, 포트라는 낱개 종이포장이 아니어서 필름태그를 넣을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컬러플러스200 필름의 태그를 넣어봤습니다.

 

예쁘다!

 

 

 

펜탁스(리코)의 담당직원 겐이치로 상이 보여준 프로토타입과 시판기를 비교해봤습니다. 디자인이나 기능은 대동소이하지만 상판 다이얼이나 파인더 상부의 레터링 색상 등이 다른 것을 보면 마지막까지 무척이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충의 외관과 기능을 살펴봤습니다.

 

완전히 정면에서 보는 건 조금 덜 멋져요. 상판이 같이 보여야.

 

상판은 마그네슘 재질이고 전면에는 아주 약간 푹신한 인조가죽을 붙였습니다. 뒷면은 그대로 플라스틱입니다.

 

이런 정도의 각도에서는 꽤 멋져보입니다.

 

 

최소초점거리 25cm(꽃모양)에서 무한대(산모양)까지의 목측식 초점입니다.

 

파인더를 따로 배치하지 않고 렌즈 바로 위에 두어 시차를 최소화했고, 목측식 초점링을 돌려 적당한 거리에 맞추도록 하면서도 눈을 떼지 않고 파인더 안에서 초점 표시 모양 아이콘들이 바로 보이도록 설계했습니다. 앞 뒤의 나사들은 일부러 십자가 아닌 1자 모양을 이용해서 클래식한 느낌을 더했다고 합니다.

 

파인더 안에서 바로 이렇게 보입니다.

 

코닥의 일회용 카메라인 펀세이버와 나란히 크기를 비교해봤어요.

 

펜탁스 HD 렌즈는 이제까지 가장 최신의 P&S인 에스피오 미니에 사용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초점거리는 25mm 니까, 35mm 풀프레임 환산으로는 약 37mm 정도가 됩니다. 밝기는 F3.5이지만 목측이란 점을 고려해볼 때 오히려 너무 밝아서 초점이 많이 나가는 것보다는 나아 보입니다. 요즘에는 필름 제조기술이 좋아져서 가장 흔히 사용할 수 있는 필름의 감도가 대개 200부터 시작하니까, 실제로는 F1.8 정도와 비슷한 정도의 셔터속도를 사용할 수도 있구요. 필터 사이즈는 40.5mm 인데, 목측식이지만 특이하게도 실제 동작메커니즘은 반셔터를 눌렀을 때 해당 초점 위치로 이동하는 전동 방식이라 렌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렌즈캡 또는 UV필터를 꼭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반셔터를 누르면 비로소 목측식 초점위치로 렌즈가 구동됩니다.

 

 

전통적인 PASM이나 장면모드가 아니라, 밝은 곳(흰색), 어두워서 플래시가 터질 곳(노란색)의 직관적 모드다이얼을 만들었습니다. 감도 설정도 다이얼로 직관적이고, 노출보정도 다이얼로 바로 됩니다.

 

전동식으로 필름이 자동으로 감기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을 위해 와인더를 설계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날로그 시절의 기술자들이 나이를 먹고 이제는 거의 퇴사해서 기술을 복각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와인더는 펜탁스 P30의 메커니즘을 가져왔다고 하네요. 스트랩 고리는 좌우 그리고 아래쪽에 더 있어서 가로로 혹은 세로로 다양하게 맬 수 있습니다. 뒷면의 태그홀더는 굳이 고집해서 만들어 붙였다고 합니다. 이게 비용이 상당히 들었다고.

 

필름실 안쪽을 보아도 매우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CR2 배터리 1개를 사용하는데, 오토포커스와 필름 와인더가 없어 무척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필름을 로딩할 때는 조금만 당겨서 퍼포레이션에 와인딩 롤러의 톱니가 걸리는 것만 확인하고 뒷뚜껑을 닫으면 됩니다. 두 컷쯤 공셔터를 날리면 카운터의 S가 되고 바로 촬영이 시작됩니다.

 

 

전원스위치는 셔터에 붙어 있고 반셔터를 누르면 노출이 부족할때 빨간 불, 와인딩을 안 해서 셔터가 장전되어 있지 않으면 아래쪽에 파란 불이 들어옵니다.

 

펜탁스 직원인 겐이치로 상에게 왜 하프 포맷으로 만들었냐고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새로운 카메라를 설계하려는 방향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일본내에서 다양한 연령층에 설문과 시장조사를 진행했고, 젊은 세대와 기존 사진 세대(나이든 세대)간의 의견은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겐이치로 상의 답은 이랬습니다.

 

-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35mm, 하프, SLR, P&S, 중형, 파노라마...)

- 필름 가격이 많이 올라 같은 필름으로 더 많이 찍을 수 있는 편이 낫다는 분들이 많았다

- SNS와 휴대폰 촬영 등에 익숙한 세대는 가로보다 세로포맷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쉽고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편리함과 간단함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를 더 했습니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처음 내놓은 제품이다, 이 제품의 시장 반응과 성공여부에 따라 본격적인 기종들을 계속 개발하고 내놓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단, 지금까지의 반응은 무척 폭발적인 것 같습니다. 없어서 못사는 상황은 고무적입니다. 

 

포트라400으로 촬영한 몇 컷을 첨부해봅니다.

 

하프판이어서 2in1 혹은 싱글컷으로 스캔이 가능합니다.

 

측광이 TTL(렌즈를 통한 노출 측정)이 아니라 렌즈 상단의 센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듯, 밝은 쪽을 향할 때 암부의 노출이 부족한 경우들이 꽤 있었습니다. 가능하다면 +1 스톱 정도 노출보정을 염두에 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겐이치로 상은 '최신의 렌즈라서 화질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하프판이어서 사실 성에는 안 차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쨍한 스마트폰과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에게 차고 넘치는 아날로그적 감성(입자감, 컬러, 흑백 등)을 만끽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목측은 재미있었지만 원하는 곳에 충분히 초점을 맞출 수 있으려면 조금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초점이 조금 덜 맞아도 나름의 감성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ㅎㅎㅎ

 

 

<막샷들입니다. 포트라400으로 촬영했고 노리츠 기종으로 스캔했습니다.>

 

BOKEH 모드(최대개방)로 찍으면 배경흐림도 나름 훌륭하네요.

 

초점을 잘 맞추면 충분한 입체감을 살려줍니다.

 

 

 

 

 

 

 

최근접. 음식 사진 찍기 정도에 적합해보입니다.

 

 

 

 

사*집 박과장님 넘 유쾌하고 좋으십니다.(게재허락 득)

 

이왕 실어드리는 김에 플래시 테스트샷도... 플래시는 광량도 적당하고 노출도 잘 잡아줍니다.

 

 

가로로 쌓는 프레이밍은 하프포맷에선 그다지 활용이 쉽지가 않습니다.

 

 

 

좌측이나 우측에 검은 테두리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와인딩이 수동이어서 컷간 간격이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그런 이유로 스캔단계에서는 좌측이나 우측으로 조금씩 밀리거나 혹은 이렇게 아예 좁아서 양쪽으로 남기도 합니다. 이런 것조차 감성으로 접근한다면 뭐 그러려니 하는 정도일 수 있겠습니다.

 

필름 사이즈가 하프포맷이라 아무래도 화질의 한계는 있습니다. 첨단의 선예도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듯합니다. 컬러는 화려하기보단 무난하지만 색들을 잘 살려주는 느낌입니다. 세로 프레이밍은 금방 적응되고 편안합니다. 카메라는 매우 가볍지만 필름과 배터리를 장착하면 들고 촬영하기 적당하고, 그립부는 들고 촬영하는 데 매우 편안합니다. 오히려 하프판이어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필름값 걱정 없이 마구마구 찍어도 부담없는 느낌입니다. 계산상으로는 36컷의 2배니까 72컷을 찍을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필름의 여유부분 때문에 79컷이나 촬영했습니다.

 

Pentax 17을 구입해서 촬영한다면 아마도 2in1 보다는 한 컷씩 스캔해서 따로 따로 70여 컷을 사용할 것 같습니다.

 

국내 출시는 7월중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가격은 위에서 예상한 범위였으면 싶습니다. 이왕이면 저렴했으면 좋겠네요. 출시 날짜와 가격 등이 정해지면 업데이트해보겠습니다. 다만 초기 주문량이 너무 많아 생산량이 따라가질 못해서 한국에는 몇 대나 수급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오픈런하는 거 아닌가

 

여기까지, 기대가 큰 Pentax 17 한롤 사용기였습니다.

 

참, 17은 하프판의 필름사이즈인 17mm 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