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뉴트로(newtro)의 열풍이 불어왔지만 사진쪽에는 그 여파가 매우 늦게 찾아와서, 필름사진의 재유행을 체감하기 시작한 게 대략 2015년 정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대략 2009년께부터 시작된 엄혹하고 긴 시기를 견뎌낸 충무로 현상소들 사이로 2017년께부터 새로 현상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에는 그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와서, 여기저기에 새로 필름사진을 현상하고 스캔하는 업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기존의 사진관들도 현상기와 스캐너를 재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 대략 열 곳이 넘는 업소들이 생겨나거나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은 2019년 여름을 지나면서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5월에 문을 연 건대앞 팔레트사진관(pallette film lab)을 찾아가보았습니다.
최근들어 개업하고 있는 여러 현상소들은 다른 현상소에서 일하면서 배워서 창업한 곳들보다 동호인이었다가 시작하는 곳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업소에서 일해봤기때문에 알 수 있는 여러 직업적 노하우는 부족할지 몰라도 추구하는 사진의 성향이나 품질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장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팔레트사진관 역시 오래도록 필름사진을 찍고 작업하고 경험을 쌓아온 동호인 주인장이 상당한 기간동안 준비해서 문을 열었기때문에 두 포인트 모두를 어느 정도 수준 이상 커버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팔레트사진관은 건대입구역과 구의역 사이에 있습니다. 개업하려는 위치를 선정할 때 왜 요즘 힙한 을지로 같은 곳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일시적 유행이나 힙함에 기대지 않고 정말 좋은 작업을 오래도록 하고 싶었다는 뉘앙스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건대입구역에서 가거나 구의역에서 가거나 거의 비슷한데 건대입구역에서 가는 게 아주 조금 짧습니다. 저는 구의역에서 내려서 사진을 찍으며 걸어가곤 합니다.
카운터 겸 작업대가 있고 옆에 각종 필름들이 잔뜩 들어 있는 쇼케이스 냉장고, 그리고 커피머신이 있네요.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며 기다리거나 혹은 주인장이나 동행과 담소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반대쪽에는 약간의 카메라들(대여가 되는지는 못 물어봤습니다)과 책들, 오디오가 있습니다. 증명이나 여권사진 촬영도 하는데, 오른쪽 왼쪽에 있는 조명과 위에 있는 배경지가 순식간에 세팅됩니다.
쥔장이 아이유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첨에 '아이유사진관'으로 하려고 하는 걸 뜯어말렸던 기억이 있네요.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는지 브로마이드를 액자로 제작해서 걸어두었습니다. '팔레트 사진관'의 팔레트가 어디서 왔는지 뻔
그래도 요즘 시대에 새로 문을 여는 현상소인데 힙함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는지 커튼 선택에 꽤 신경을 썼습니다. 그냥 찍기만 해도 힙힙힙.
팔레트는 할 수 있는 작업들이 많아서 가격표도 꽤 복잡한 편입니다. 특히 어쩌면 변방이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건대앞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컬러, 흑백, 슬라이드는 물론 영화용 필름의 현상까지 모두 직접 작업한다고 합니다. 현재는 35mm와 중형 필름들까지. 인화는 잉크를 이용한 드라이랩으로 3x5인치에서 8x10은 물론 더 길게 8x22인치 파노라마까지 가능하고 증명/여권사진은 2만원이네요. 나중에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자세한 가격표는 인스타그램 @pallettefilmlab 에서 찾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에 영업안내나 이벤트, 현 상황같은 것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오기도 합니다.
안쪽으로 들어가 작업실 사진을 마구 담아 공개하고 싶었는데 워낙 바쁘게 작업해야 하는 오밀조밀한 공간이라 담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메인 장비인 노리츠의 HS-1800을 담았습니다. 이 외에 후지의 SP-3000 스캐너도 있고(주문할 때 취향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답니다), 평판이나 다른 전용 필름스캐너도 또 있고, 컬러현상을 담당하는 현상기와 JOBO의 현상장비들, 슬라이드를 담당하는 현상기, 필름 건조기, 인화기 및 그밖의 다양한 장비들이 분주하게 작업중이었습니다.(컬러는 코닥약품을, 흑백은 xtol을 기본약품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러면 '아 여기도 노리츠로군' 하실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서두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동호인으로서 오래도록 추구해 온 자신의 취향과 품질을 살려내기 위한 주인장의 노력이 녹아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 스캐너는 다른 업소들과 비슷한 그런 단순한 노리츠가 아닙니다. 한번 맡겨보시면 빠른 속도로 많은 작업을 저렴하게 해내기 위한 플로우 위주의 다른 업소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시리라 믿습니다. (팔레트사진관을 인정하시는 분들의 서포팅 댓글이 이 기사에 좀 달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ㅎ)
개인적으로 쥔장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초심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유행이나 힙함에 기대면 다른 유행이 오면 지나가고 더 힙한 게 나타나면 구식이 됩니다. 빈티지는 어쩌면 혹세무민하기 위한 현혹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가격이 경쟁력이라면 더 싼 곳에 밀리면 그만이겠죠. 품질과 실력이야말로 자산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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