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12.03.03 16:56
얼마전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낸 코닥이 2012년 3월 1일부로 자사의 유명한 슬라이드필름인 E100G와 E100VS의 생산을 종료한다고 공지했습니다.

http://www.kodak.com/global/en/professional/products/colorReversalIndex.jhtml?pq-path=1229&ClickID=a5s9apwtvnv5vwkpy0lnnwk0nazn9nr5vsss 

 
코닥은 과거에 참 많은 종류의 슬라이드필름들을 생산하고 판매해왔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하나씩 하나씩 생산을 종료시키더니 이제는 급기야 그래도 가장 잘 팔리고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두 필름까지 그만 만들겠다고, 필름사진 애호가들을 멘붕시킬만한 발표를 냈습니다.

E100G와 E100VS, 그리고 엘리트크롬까지니까, 코닥은 '이제 슬라이드는 안 만들어'라고 선언한 건데요. 파산보호신청 이후 '디지털카메라와 관련된 삽질은 중단하고 전통적인 아날로그쪽에 집중하겠다'라고 발표해놓고는 뒤통수를 치는 셈이 됐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시면 아마 정말 멘붕이실텐데..

제 나름의 분석을 첨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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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에 후지필름은 갑자기 '벨비아를 단종시킵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다들 으악, 했죠. 벨비아를 안 만든다니.. 한탄과 비탄에 빠진 사람들은 벨비아를 냉장고에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유통단계에 있던 벨비아들은 가능한 많이 사두고 오래오래 찍으려던 사진가들의 냉장고 속으로 잔뜩 사재기되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후지는 공지를 통해 '유제를 바꿔 더욱 좋아진 벨비아II가 새로 나왔습니다'라는 발표를 내고 RVP50이라는 새 필름을 발매했습니다. 환경규제때문에 유해물질을 줄이고 이런저런 것들을 개선한 새 필름이라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팔더군요. 필름의 특성도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_-

 2010년에 코닥은 이전의 대표적인 프로페셔널 컬러네거티브 필름인 포트라 계열의 VC와 NC를 단종시키고 뉴 포트라를 발매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깔끔하질 못했습니다. 뉴 포트라를 발매한다고 공지를 먼저 띄웠는데, VC와 NC의 재고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VCNC와 뉴 포트라는 시장에서 혼재하기에 이르렀고, 한국같은 경우는 시장에 아직도 VCNC 재고가 많아서 심지어는 뉴 포트라의 발매 자체가 늦어지기도 했습니다. 

필름을 리뉴얼하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후속필름이 나온다는 걸 알리는 것 못지 않게 기존 필름들의 재고를 떨어내는 것이겠죠. 필름은 유효기간이 있기때문에 안 팔리고 계속 가지고 있다가는 못 팔거나 손해를 보게 마련입니다. 

이제는 필름사진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보편적 수단이라기보다는 좀더 좋은 즐길거리, 좀더 아날로그적인 추구를 위한 고급이거나 혹은 고상한 취미 혹은 작업의 도구가 된 마당에, 코닥이 나름 고부가가치인 값비싼 슬라이드필름의 생산과 판매를 헌신짝처럼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래도록 같은 원료와 방식으로 생산해 온 Ektarchrome 계열의 필름들을 그만 만들고, 더 값싸고 확보하기 쉬우며 품질도 좋은 원료를 이용해서 원가가 절감된 새로운 필름을 생산해서, 기존 필름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아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의 전략일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새로 뭐가 나올거다 기다려라'라는 얘기는 한 마디도 없이 '재고는 6개월 정도 갈거다'라고만 알리는 건(우리는 실제 재고가 얼마인지, 판매량이 얼마인지도 모르잖아요?) 포트라에서의 경험을 교훈삼아 시장재고의 컨트롤을 위한 소비자심리 자극 테크인 거 같구요.

그래서 저는.. 두세 종류의 새로운 슬라이드필름을 기대해봅니다.

제 추측이 맞을지 틀릴지는 몇 달 걸리겠죠. 물론 코닥이 안 만들더라도 다른 데에서 더 나오겠습니다만.



아니면 말구요, 라고 하기엔 슬라이드필름의 시장수요는 불보듯 뻔한데 그냥 안팔아, 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너무 강하네요.


기대해봅시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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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놓고 업계 분들 몇몇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와 소식을 묻고 전해들었는데, 일단 들리는 바로는 코닥이 정말 슬라이드필름이라는 제품군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거네요.

이유는 '수요부족'이라고 합니다.

어이없지만 진짜일지도 모릅니다.


코닥, 니네 그러니깐 망했지.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