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엡스-다게르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진술'이 발명된 게 1839년이니까, 아직 채 2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장 보편적인 사진기술의 형태로 이용된 것이 필름이었구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필름사진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1997년에 상업적 형태의 디지털카메라가 백만화소(MP)를 넘어서더니 1999년에는 드디어 세계 최초의 디지털 SLR 카메라인 D1이 니콘에서 발표됩니다. 그러나 아직은 전세계 필름 사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미디어와 보도부문에는 적용되지 못하다가,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드디어 하나 둘씩 이 첨단 장비들로 대체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세계적 추세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업계도 같은 출렁임을 겪었습니다. 오래도록 사진을 해온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여러 현상소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기에, 드디어 한국의 언론사 잡지사들도 대거 디지털로 장비를 바꿉니다. 이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러 현상소들이 문을 닫게 됩니다. 지금도 '충무로 현상소'를 검색해보면 이미 십여 년 전에 문을 닫은 여러 현상소들의 이름이 검색됩니다.


하지만 거꾸로 매우 고가였던 디지털 SLR을 비롯한 좋은 품질의 사진 장비들이 대중화되고 널리 보급되면서 다시 사진 붐이 옵니다. 그 중 일부의 아마츄어들이 필름사진을 다시 접하게 되고, 충무로에는 오히려 몇 곳의 현상소가 생겨납니다. 큐픽도 그 중 한 곳이었죠.


그러다 디지털 카메라의 기술발전도 정체되고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오히려 사진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맙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카메라 업체들뿐만아니라 전통적인 필름과 인화지, 약품을 생산해오던 많은 업체들이 드디어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Forte, Efke, Ferrania와 같은 필름과 인화지 전문업체들, 규모가 컸던 Konica와 Agfa가 필름사업 자체를 접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2012년, 종국에는 사진계의 거인 Kodak마저 파산보호신청을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국내에는 '코닥이 망했다'라고 잘못 보도되면서 아주 없어진 것으로 오해를 샀지만, 특허를 팔고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여러 부문이 가치를 인정받아 바로 이듬해 파산보호를 졸업하기에 이릅니다. 코닥의 필름과 인화지를 비롯한 아날로그 부문은 Kodak Alaris라는 이름으로 종전 코닥의 최대주주 중 하나였던 영국자산공사에 의해 인수되어 별도 회사로 독립하는데, 아쉽게도 파산보호 진행 과정에서 수많은 필름들이 단종되고 인화지의 생산도 중단되었었습니다. 모든 슬라이드필름들이 단종되었고, 골드 시리즈는 단순화되었으며 프로용 필름이었던 울트라컬러(UC)도 없어졌습니다. 포트라는 VC와 NC를 통합하면서 한가지로 정리됐고, Tmax3200(TMZ)와 PX, IR(적외선) 필름들이 모두 단종되었었습니다. 그나마 Ektar가 새로 발매되면서 필름사진 애호가들에게는 한 줄기 위안이 되었었더랬습니다만.


한편 후지필름은 코닥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있었으니, 점점 매출과 수익이 줄어가는 필름과 감재사업의 비중을 줄이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필름용 유제와 젤라틴, 콜라겐, 그리고 화학적 가공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온 덕분에 후지필름은 전혀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 화장품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밖에도 의료나 전자기기, 디지털카메라 등의 사업이 성공적으로 확장되면서 필름산업 이후의 체제로 완전히 체질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세계적으로도 2000년대 후반이 필름시장의 최저점이었으며, 국내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사진용 필름사업은 이제 사라져버릴 분야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충무로에서도 2010년에서 2012년께까지 여러 현상소들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줄이는 등의 부침을 겪었습니다. 2003년에 이은 두 번째 출렁임의 골짜기였던 셈이죠.


2006년쯤엔가 필름사진을 많이 찍고 즐기던 한 사진동호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던지던 질문을 기억합니다. 


'필름 언제까지 나올까요?'


당시에는 '10년 정도는 나오지 않겠냐' 라든가 '지금이라도 즐기자' 정도의 얘기들이 오갔었습니다.


(여담이라면, 이러던 시절이었던 2005년 말에 '큐픽'이라는 현상소를 만들었고, 2007년에는 충무로에 문을 열었고, 그 해 10월에는 '이루의 필름으로 찍는 사진'이라는 책을 쓰고, 2008년에는 대대적으로 큰 규모의 '큐픽'이 오픈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 5월에 찾아온 촛불정국, 그리고 10월에 찾아온 외환위기 등으로 국내 정치와 경제가 휘청이고 경영이 힘들어지고,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었죠. 그러다 2009년 말에 큐픽에서 나와 포토마루를 창업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시장도 정세도 읽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꾸로 거꾸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었군요...)


그렇게 춥고 긴 필름사진 업계의 겨울이 계속되는가 싶었는데,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들의 성능이 좋아진 건 오히려 사진시장의 활성화를 불러왔습니다(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를 위시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사진에 눈을 뜨게 됐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휴대폰의 카메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더욱 고성능의 디지털카메라는 물론 #filmisnotdead 라는 해시태그를 필두로 필름사진까지 서로 올리며 공유하게 되면서 조금씩 필름사진에도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춥고도 추웠던 아마도 2014년께의 어느 날부터,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전화들이 있었으니 '필름 넣고 사진 찍었는데 현상 어떻게 하나요'라는, 필름을 처음 써보신다는 젊은이들의 문의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로 필름사진을 접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2015년, 16년이 지나면서 국내에서는 필름사진 현상과 스캔의뢰가 늘어나는 것을 보았고, 세계적으로도 문을 닫았던 이탈리아의 Ferrania는 킥스타터의 펀딩을 통해 '회사를 다시 세우고 필름을 생산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으며 2017년 벽두에는 코닥이 '슬라이드필름을 다시 만들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릅니다. 많은 분들이 깜짝 놀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블로그에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올렸던 포스팅도 수만 회 이상의 방문자를 기록하며 널리 알려졌었습니다. 


다 없어지고 사라질 줄 알았던 필름들이 이런 이름 저런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새로 발표되었고, Berrger, JCH, Oriental 등의 새로운 흑백필름들이 나왔으며 Ferrania도 P30이라는 필름을 발표했습니다. Foma와 Adox도 이제 더는 구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흑백 슬라이드필름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성능은 아쉬웠지만 CR200, Wittner, VarioChrome과 같은 슬라이드 필름들도 만들어져 나왔습니다. 코닥은 아직 Ektachrome을 발매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단종 6년만에 Tmax3200 필름을 재발매했습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Ektachrome E100 필름도 올 여름께에는 다시 판매를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닥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던 그 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필름으로 100년 넘게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았겠지만 이제는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규모를 줄인다면 여전히 필름으로도 아주 오랜동안 많지 않은 사람들은 따뜻하게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지금의 사진용 필름산업의 경제적 규모는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필름 회사들은 지금의 규모만으로도 충분한 사업을 영위할 만큼이 되겠죠. 코닥이 다시 필름을 내놓으려고 하고 사진용 필름에 열심인 이유는 충분한 구조조정을 거치고 난 뒤 필름사진 사업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규모를 만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후지필름의 다른 부문의 매출은 더욱 신장하고 있고 따라서 필름사업 부분의 매출비중은 더욱 작아지고 있습니다. 전체로 보면 필름사업은 안 해도 그만인 셈이 되어갈 것입니다. 실제로 후지필름은 지난 기간동안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는 필름의 종류를 줄이고 있습니다. 리얼라를 단종시켰고, 소매용 패키지로는 감도 100의 네거티브를 아예 생산하지 않은 지 오래고, 프로비아400을 없앴고, 네오판1600과 400에 이어 이제 아크로스100도 단종하겠다고 합니다. 수퍼리아1600과 내츄라1600도 단종을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가격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그파에 '비스타'로 공급하던 OEM 제품도 더는 공급하지 않고 없앤다고 합니다. 조금씩 시장눈치를 보면서 돈도 안되고 귀찮기만 하고 신경은 쓰이는 필름사업 부문을 구조조정하고 있는 겁니다. 2005년의 아그파였다면, 2007년의 코니카미놀타였다면 후지필름도 청산 혹은 매각으로 없애버렸을테지만, 2018년이어서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있는 거겠죠.


2007년 DNP에게 필름 재고분과 아날로그 사진부문을 매각했던 코니카미놀타도 다른 부문으로 먹고는 살고 있지만 미놀타 부문까지 소니에 넘기면서 이제 사진을 했던 회사라는 흔적은 거의 지워져가고 있습니다. DNP는 필름설비는 모두 없애고 재고만 센츄리아로 포장해서 팔아치우고는 인화지와 감재만 팔다가 이제는 그것도 시들하다고 하죠.


후지필름은, 아직도 디지털카메라와 사진용 제품들을 만들어 판매하고 사진문화를 지키고 있는 회사로서 아무리 다른 분야가 잘 돼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더라도 그런 만행을 저질러 수많은 사진필름 애호가들에게 잔인하고 매정한 회사라는 낙인을 찍히는 건 두려운가 봅니다. 일본에는 그런 문화가 조금 있죠.


사진용 필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코닥과 후지필름은 아이러니의 극을 보여줍니다. 필름을 고집하다 망할뻔한 코닥은 그래도 필름으로 오래오래 갈 것 같고, 다른 걸로 잘 먹고 잘 살게 된 후지필름은 필름따위 접어버리고 배나 튕길 것 같고..


그래도 '필름'회사라고 '후지필름'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후지필름. 하지만 이제는 눈치를 보며 '필름'을 떼어버리고 싶어하는 후지. 사실 이미 후지필름의 고모리 회장도 그냥 후지필름이 아니라 자본회사인 후지필름 홀딩스의 회장입니다. 


아크로스 100 필름의 생산종료를 발표하던 그 때 페이스북의 수많은 필름사진 애호가들은 #fujifilm 대신 #fujiNOTfilm 이라는 태그를 달며 후지필름을 비난하고 아쉬워했습니다. 


'당신들은 필름회사가 아니고 싶어하는구나'


필름사업부문을 정리하거나 매각하기 전에 너무 많은 필름산업의 유산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이루"

원래 '사진술'은 음영이 반대로 되어 있는 네거티브(Negative)의 형태로 발명되었습니다. 감광성을 띄는 은염(Silver-Halide)은 빛을 많이 받은 부분에 전하를 더 띄게 되어 현상액 속에서 은으로 더 많이 변하고, 이 결과로 필름의 베이스 위에 은의 불투명한 검정색 입자의 농도가 짙어져 새카맣게 상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밝은 부분은 현상된 필름 위에서 검게, 어두운 부분은 투명하게 보이는 역상, 네거티브의 필름을 얻게 됩니다.


이 필름을 인화지 위에 놓고 빛을 투사하면 필름의 어두운 부분을 통과한 빛은 인화지에 적게 닿고, 필름의 투명한 부분을 통과한 빛은 인화지에 많이 닿게 되어, 역시 은염 성분으로 이루어진 흰색의 인화지 위에서 다시 역상이 되어 흑백의 정상(Positive) 사진을 얻게 됩니다. 네거티브의 네거티브로 포지티브를 얻는 것이죠.


이 네거티브-네거티브 메커니즘은 매우 효율적입니다. 필름에 얻어진 네거티브 상으로부터 이런저런 조절(노광시간, 닷징, 버닝 및 인화지의 선택, 인화지 조작 등...)을 통해 매우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필름 그대로도 정상의 상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필름의 네거티브는 종이사진으로의 '인화'를 위해 설계되는 것이어서 자체로는 실제의 장면보다 컨트라스트도 낮고 맨눈으로 보아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필름 자체만으로도 실제의 장면처럼 보이는 정상, 포지티브(positive)의 필름을 얻으려면 암부와 명부의 대비가 강한 전용의 필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컬러슬라이드 필름이었죠. 


슬라이드(slide) 필름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사실 필름 자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 컬러필름을 '컬러네거티브 필름'이라고 부른다면 슬라이드 필름은 '컬러포지티브 필름'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겠죠. 역상으로 현상한다고 해서 리버설(Reversal) 필름이라고도 부릅니다. 슬라이드는 환등기로 스크린에 투영하기 위해 한 컷씩 잘라 네모난 틀에 끼워둔 형태를 말하고, 그 용도의 필름이기때문에 그렇게들 널리 부르게 된 것입니다.


컬러 포지티브 필름은 몇몇 용도를 위해, 그리고 그것이 가진 특성때문에 사진가들에게 매우 선망의 매체였습니다만 비싼 가격과 불편하고 번거로운 현상이라는 진입장벽이 있었습니다. 


종이로 인화된 것만이 사진이었던 시대에 등장한 포지티브 필름은 필름에 맺힌 상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것을 환등기라는 장치를 통해 스크린에 투사하면 종이로는 얻을 수 없는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의 재현으로 더욱 현실감있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장면이 실제처럼 아름답게 보이던 것을 상상해보시면 비슷합니다. 실제로 극장의 영화는 포지티브로 만들어진 영사용 필름을 화면에 투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사실, 포지티브 필름의 역사가 짧은 것은 아닙니다. 에디슨이 활동사진을 발명하고 영화가 극장에 걸리던 시절, 아직 컬러 영화가 보편화되기 전 극장에 걸리던 영사용 필름들은 모두 흑백으로 된 포지티브 필름이었습니다. 다만 그것들은 네거티브로 촬영된 원본 필름을 영사용으로 다시 네거티브 듀프(Duplicate)함으로써 얻는 포지티브 필름이었을 뿐이죠. 상영본 필름을 다량으로 생산해야 하는 상영 배급용 필름을 제작하기에는 이런 네거티브-네거티브 필름 복사 방법이 유용했습니다. 컬러 영화가 보편화된 이후에도, 심지어 지금도 촬영은 컬러 네거티브 필름으로 하고 듀프로 포지티브 상영본을 만들어 배급하고 있습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영화용 필름'은 그래서 컬러네거티브 필름입니다.


그래서 현상하는 것만으로 포지티브 상을 만들 수 있는 필름은 컬러가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전설의 코다크롬이 그랬고, 이후에 만들어진 엑타크롬 역시 그랬습니다. 흑백필름도 포지티브 현상을 통해 정상의 상을 가진 필름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용도가 한정적이었습니다. 이왕 포지티브를 쓰려면 컬러를 쓰고 말았겠죠.


그래도 이런저런 목적과 호기심으로 흑백필름을 포지티브로 현상하는 수요가 조금씩 있었고, 네거티브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일반적인 흑백필름을 리버설 현상해서 얻어지는 포지티브 상은 컨트라스트가 약했기에 더 많은 은성분을 도포한 포지티브용 흑백필름이 따로 만들어져 팔렸습니다. 그게 옛날에는 AGFA에서 만들어 판매하던 그 유명했던 스칼라 SCALA 필름이었고, 감도는 200이었습니다.


AGFA SCALA200x 패키징의 모습



이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서는 흑백 리버설 현상을 서비스하는 현상소에 보내야만 했었는데, 국내에는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나 미국 등의 유명 현상소에 보내야 했고 그 과정이 어렵거나 불편하거나 비싸거나 오래걸리거나 해서 실제로 사용해보신 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밖에 흑백슬라이드를 경험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코닥에서 발매했던 Tmax 필름용 리버설 현상킷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것이 있었는데 수요가 많지 않아 잠시 적은 양이 수입되어 판매되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 서비스하는 현상소가 없으니 직접 현상작업을 해야만 했었죠.


하지만 아그파가 문을 닫으면서 이 필름도 사라졌고, 필름 수요의 감소와 함께 잊혀지는 듯했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구할 수 있는 흑백 슬라이드 필름이 두 가지나 있으니 바로 포마에서 발매되는 포마팬 Fomapan R100과, 아그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ADOX의 스칼라 SCALA 160 필름입니다.



Fomapan R100과 ADOX SCALA160의 패키징 모습



포마팬 R100은 몇 년 전부터 국내의 모 업체를 통해 수입되었는데 약품이 수입되지 않아 현상할 방법이 없었다가 이제 약품도 수입되면서 자가현상하시는 분들은 직접 작업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매우 독한 약품, 번거롭고 조금은 까다로운 과정이 있어 자료나 동영상, 리뷰 등을 통해 충분히 사전정보를 확보하신 다음 작업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판매되는 약품 킷은 8롤 정도를 권장 현상량으로 추천하고 있는데 가격도 상당하기때문에 그다지 경제적인 편은 아닙니다.


스칼라160은 국내에는 아직 판매하는 곳이 없습니다만 수요가 있으면 들어오겠죠. 박스포장은 없고 이렇게 벌크형태로 판매됩니다.


두 필름 모두 직구가 가능합니다만 포마의 경우는 국내 가격도 매우 합리적입니다.


베이스를 비교해봤습니다. 서로 확연히 다르네요.






이 필름들은 사실 일반 흑백필름과 구조상 다를 것은 없습니다. 보통의 흑백필름과 동일한 방법으로 현상하면 네거티브의 흑백필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리버설로 현상했을 때 풍부한 계조와 컨트라스트를 가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은과 유제를 발라놓은 것이죠. 은함량과 유제의 두께가 얇은 다른 일부 흑백 필름들은 리버설현상을 거치면 흐리멍텅하고 뿌옇게 나옵니다.


현상의 과정은 대충 이렇습니다.


1차현상 - 잠상을 은화시킵니다.

블리치 - 1차현상에서 만들어진 은 입자를 녹여냅니다.

재노광 - 남은 부분들(포지티브 성분들)에 빛을 쬐어 은화시킵니다.

2차현상 - 유제들을 실제 상으로 맺히게 합니다.

정착 - 남은 찌꺼기 유제는 녹여냅니다.


이렇게 현상과정을 거치면 흑백인데도 상이 정상으로 보이는 슬라이드 필름이 얻어집니다.


왼쪽(흑백슬라이드)과 오른쪽(컬러슬라이드)



현상된 포마팬 R100




현상된 SCALA160



컬러슬라이드필름도 루페나 환등기로 보면 마치 현실세계를 보는 듯한 입체감과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됩니다. 흑백슬라이드 역시 그렇습니다.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지만 그 미려한 입체감과 선명함은 그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포마와 아독스 두 필름의 특성은 조금 다르기는 한데, 공통된 특징은 입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곱고 해상력이 좋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계조가 매우 좋은데, 컬러슬라이드필름은 발색과정에서 착색된 색상이고 흑백슬라이드는 은 성분이 그대로 상을 이루기때문에 계조특성이 다릅니다. 흔히 흑백사진에서 듣게 되는 '암부는 촬영에서, 명부는 현상에서'라고 하는 얘기는 네거티브인 흑백필름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흑백슬라이드는 암부를 풍부한 은성분으로 가지고 있어서 그 부분의 계조가 매우매우 풍부합니다.


컬러슬라이드필름의 암부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매우 강력한 광원을 가진 스캐너가 필요한데, 흑백슬라이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면서도 보통의 네거티브 흑백필름이 가지는 명부계조를 반대로 암부가 가지고 있는 셈이죠. 암실에서 닷징하면서 살려내던 계조, 스캔하면서 명부쪽 커브를 만지거나 혹은 스캔후 보정하면서 명부를 살려낼 때 느꼈던 그 풍부함이 암부에 살아있습니다.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제조될 때부터 더 풍부한 은 성분을 유제로 발라두었기 때문에 담아내는 계조 자체가 더 폭넓은 듯합니다. 루페로 들여다볼 때뿐만 아니라 스캔과정에서 조절하면서 느껴지는 자유도는 마치 디지털에서의 RAW 파일을 컨버팅해낼 때 느낄만한 엄청난 다이내믹레인지에 비견할만큼입니다.


루페로 볼 때 보이는 정도의 사진입니다.



창 밖의 명부를 기준삼아 밝기를 조정해서 스캔해봤습니다.


어두운 부분들을 끌어올려 스캔해봤습니다. 어렴풋이 오른쪽 어두운 벽의 벽돌패턴까지도 보입니다.



사실 흑백슬라이드는 일정한 부분 이상에서는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써보신 분들이 많지 않을테니까요. 하지만 루페나 환등기로 보고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부분 외에도, 스캔 이후에 디지털 이미지로 활용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엄청난 강점을 가진 듯합니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서 흑백으로 변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아날로그 흑백사진의 특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우 뛰어난 샤프니스와 입자감, 그리고 엄청나게 강력한 계조특성과 다이내믹 레인지...


미확인 정보로는, 스칼라160은 역시 Adox의 상표로 판매되는 실버맥스 SilverMax 필름과 거의 같은 것일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은을 많이 넣었다고 광고하는 필름인데요, 그렇기때문에 리버설 현상을 해도 또한 뛰어난 슬라이드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요. 가격차가 크지 않다면 큰 의미는 없겠습니다만.


아름답고 뛰어난 흑백 슬라이드의 세계도 한번쯤 구경해보시는 것,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필름 모두 이제 국내에서 현상이 가능하니까요.



Posted by 이루"

이전 기사에서 일포드의 흑백필름이 담긴 일회용 카메라는 재활용이 무척 쉽다고, 그 과정을 상세히 포스팅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해본 거라 매우 많은 과정이 쓸 데 없거나 혹은 삽질이거나 ㅋㅋㅋㅋㅋ


그리고 필름을 꺼낼 때 부러뜨리고 금가도록 만든 부분으로 빛이 새어들어와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번 더 해보는 과정에서 아주 손쉽게 위험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 그리고 빛도 덜 새어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기에 개정판으로 다시 포스팅합니다.


이렇게 하시면 꽤 더 여러번 재활용이 가능하실거예요. 카메라의 원형 그대로를 거의 보존하면서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일회용 카메라입니다. 일포드는 흑백필름만 생산하는 업체인데 일회용으로는 XP2가 들어 있는 버전과 HP5가 들어 있는 버전이 있습니다. XP2가 들어 있는 버전을 구입하시면 다른 컬러필름과 똑같은 방식(C41)으로 현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필름을 현상하는 곳이면 어디든 작업이 가능합니다. 컬러약품으로 현상하는 흑백필름이거든요. HP5가 들어있는 버전을 구입하시면 흑백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곳에 맡겨야만 합니다.


코닥이나 후지필름도 일회용 카메라를 만들지만 필름을 재장전하는 것에는 약간 난도가 있습니다. 코닥은 그래도 쉬운데 후지는 꽤 어렵습니다. 참, 일회용 카메라들 중에는 이렇게 일단 사용되고 남은 들을 업체가 수거해서 재생한 다음 자기네 상표를 붙여 파는 저렴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카메라들은 재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일포드의 카메라는 퍽 쉽고 결과도 좋아서 굳이 해보려고 했던 거죠.



일단 구입하셨으면 신나게 촬영을 합니다. 보통은 카메라째로 현상소에 맡기고 현상소에서 알아서 카메라를 부순 뒤 필름을 꺼내지만, 우리는 재활용할 거라서 직접 필름을 꺼낼 겁니다. 그것도 카메라를 부수지 않고!



이전 버전의 포스팅에서는 부수어서 필름을 꺼낸 카메라를 사용했기때문에 오른쪽 아래의 필름모양 부분이 갈라져 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카메라도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갈라진 부분을 완전히 잘 막아서 쓰지 않으면 마치 스폰지가 삭은 카메라들처럼 빛이 새어들어갑니다. 특히 아랫판보다도 필름 와인딩하는 부분이 갈라져 벌어져서 빛이 스며들게 됩니다. 그래서 갈라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게 잘 분리해야 합니다.



사진관이나 현상소에서는 이렇게 합니다. 옆구리만 벌려 뜯어내면 필름을 꺼낼 수 있거든요. 이전 버전의 포스팅에서도 그랬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과정은 필름만 꺼내는 거니까 암백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냥 눈으로 보면서 합니다.



일자 드라이버를 준비해서 아랫쪽 가운데 판 사이로 밀어넣습니다. 무리한 힘을 주지는 마세요. 오른쪽 둥그런 판은 잘 벌어지고 갈라지도록 부서지기 쉽게 돼 있습니다. 살짝 살짝만 해도 뒷판은 잘 분리됩니다.



드라이버를 깊이 밀어넣어서 위쪽 세 개의 노치가 분리될 수 있도록 들어줍니다. 이 때 카메라의 양 옆구리쪽도 드라이버를 살짝 넣어서 맞물려 있는 노치들이 분리되도록 해 준 다음 아랫판을 들어주면 뒷 뚜껑만 분리됩니다. 왼쪽의 두 개를 먼저 들어주고 오른쪽의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어주면 됩니다. 무리한 힘을 주면 갈라지니까 살살 하세요. 하다 보면 자칫 앞판이 분리될 수도 있을텐데 회로를 절대 만지지 않도록 하면서 다시 끼워주세요. 앞판을 빼낼 필요는 없습니다. 회로를 손으로 만지면 엄청난 전기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고 만진 부분에 화상을 입으실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뒷 뚜껑이 분리됐습니다. 오른쪽에는 24컷짜리 일포드 XP2 필름이 들어 있네요. 일회용 카메라들은 왼쪽의 스풀에 필름이 풀려 나와 있다가 찍으면서 감겨 들어가는 거라 다 찍고난 다음이면 그냥 부수어 필름을 꺼내도 됩니다. 다만 우리는 재활용할 거니까 이렇게 하는 거죠.



앞판을 분리하지 않았기때문에 훨씬 안전하지만, 그래도 대형 캐패시터가 구석에 드러나 있어 손으로 만질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화살표 부분을 만지면 여전히 감전될 수 있거든요.



카운터를 맞춥니다. 장착된 필름은 24컷짜리지만 필름의 앞쪽 여유분까지 찍을 수 있기 때문에 27컷이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찍어보면 30컷까지 찍을 수 있더군요. 36컷짜리 필름을 다시 끼울 거면 39 정도에 맞추면 됩니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두 가지 버전이 있더군요. 카운터가 27까지밖에 없거나 혹은 39까지 있거나.. 27까지밖에 없는 버전이면 거꾸로 12컷 정도를 되돌아가는 위치까지 뒤로 돌려줍니다. 그럼 한바퀴 돌아서 0으로 가겠죠. 그냥 돌리면 잘 돌아갑니다.


<이제부터 암백 안에서의 작업입니다.>


암백 안에는 새로 장착할 필름(400짜리 넣으세요), 카메라, 뒷판 이렇게 세 가지만 넣으면 됩니다. 흑백필름이 들어 있던 카메라지만 컬러필름을 넣어도 됩니다. 컬러사진도 아주 잘 나옵니다.



암백 안에서 스풀에 필름을 감아줍니다. 스풀의 한쪽(위 사진의 오른쪽부분)은 두줄로 홈이 파져 있고 그 부분이 카메라 아래쪽 방향입니다. 이전 버전의 포스팅에서는 거꾸로 감았었는데, 그냥 지금 이 방향대로 감아주면 됩니다.



팽팽하게 잘 감아줍니다. 지금 보이는 이 필름면(앞면)은 필름을 감을 때 정도의 지문은 묻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사진은 뒷면인 유제면에 찍히는 것이고 암백 안에서 손으로 만질 때 앞면에 조금 묻은 지문은 현상할 때 씻겨나가니까요. 



필름을 카메라에 장착합니다. 퍼포레이션(구멍들)이 톱니바퀴에 잘 물려서 팽팽한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왼쪽의 스풀을 엄지손가락으로 잡고 있으면 오른쪽 필름 파트로네는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뒷 뚜껑을 잘 맞춰 닫아줍니다. 아래쪽 바닥판은 튀어나오거나 단차 없이 매끈하게 딱 맞아야 합니다. 사방이 잘 맞았으면 어디 한 곳도 단차가 안 생기고 아귀가 잘 맞습니다. 그러면 꼭꼭 눌러 딱딱 소리가 나게 잘 닫아줍니다. 사방을 만져서 잘 맞물렸나 확인합니다. 이제 암백에서 꺼냅니다.


어쨌든 분리하는 과정을 거쳤기때문에 약간 벌어지거나 혹은 미세하게 조금 깨지거나 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완벽하게 딱 맞지 않고 1mm쯤 벌어지거나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스카치 테이프 같은 것으로 붙여 고정해줍니다.



이제 새 필름을 장착한 30mm F9.5짜리, 플래시까지 장착된 아주 가벼운 새 카메라가 하나 생겼습니다.


어때요, 참 쉽죠?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