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25. 2. 9. 10:50

지난해에 영국 Harman에서는 Phoenix라는 컬러필름을 내놓았습니다. 새로운 컬러필름에 대한 갈증과 기대가 워낙 컸던 터라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성능에 많은 분들의 호불호가 갈렸었습니다. 하만은 계속해서 성능을 개선하고 새로운 필름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필름사진 애호가들에게 내놓았었는데요, 피닉스의 성능개선판 혹은 후속필름의 첫 시리즈로 RED라는 필름이 곧 출시된다고 해서 급히 달려가 한 롤을 요청해봤습니다.

 

 

첫 인상은 '레드??' 였습니다. 패키징에는 REDSCALE이라고 쓰여 있고 박스는 붉은 색입니다. 레드스케일은 거의 20년 가까이 전부터 로모그래피에서 발매를 시작해서, 여러 브랜드에서 판매하기도 했던, 필름의 유제면을 뒤집어 오렌지 마스킹이 색필터 역할을 하도록 한 특수효과형 아이디어 필름입니다.

 

컬러필름은 하나의 필름면에 시안, 마젠타, 옐로우의 색을 분리해서 층별로 노광하여 담기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그러기 위해 부정색성을 제거하는 필터층, 할레이션 방지층 들이 겹겹이 발라져 있고 이 때문에 현상하고 나면 베이스가 주황색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오렌지마스킹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뒤집어 사진을 찍으면 두 가지의 현상이 일어나는데, 하나는 필름면의 두께 때문에 미세하게 초점이 덜 맞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색필터 배열이 거꾸로 되기 때문에 오렌지색 필터를 사용한 것처럼 붉은 사진이 찍힌다는 점입니다. 아, 색필터를 사용한 것과 유사하기때문에 2스톱 정도의 유효감도가 떨어집니다. 400짜리 필름을 100 정도로 찍어야 제대로 노출을 얻을 수 있죠.

 

보자마자 든 생각은 '피닉스200 필름을 뒤집었나?'였습니다.

 

하지만 곧 '오호라'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는데요, 이 레드 필름의 유효감도가 125라고 되어 있는 부분때문이었죠. 그렇다면 뒤집기 전의 필름 감도는 400을 넘는다는 건데, 아시다시피 피닉스는 100에서 125 정도로 촬영해야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니 피닉스를 그대로 이용해서 만들 수는 없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거든요.

 

피닉스200 필름과 패키징을 비교해봤습니다.

 

 

약간 오렌지색에 가까운 피닉스에 비해 레드는 진짜 선홍색으로 붉은 박스, 그리고 파트로네의 색도 진홍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붉은 사진을 만들어주려나? 

 

많은 분들이 사용해보셨듯이, 피닉스는 이전의 보편적인 컬러필름들과 유사한 오렌지마스킹이라기보다는 자주색, purple에 가까운, 마치 핑크빛이라고 할만한 마스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붉고 푸르고 노출에 따라 이리저리 야생마처럼 튀는 색상을 만들어낸 것인데, 이 마스킹을 뒤집으면 핑크빛의 보색인 녹색 계열로 사진이 나오게 되어야 합니다.

 

'오호라??'

 

피닉스의 기술을 이용하긴 했더라도 뭔가 다른 필름인 것은 명확해보였습니다. 레드스케일로 발매된 것은 아쉽긴 하지만, 또다른 새로운 필름인 건 분명한 듯합니다. 아무튼, 테스트 사진을 촬영하기 전에 일단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플라스틱 통 뚜껑 색이 선홍색인데 이게 사진으론 잘 표현이 안될만큼 예쁩니다. 이건 분명 마케팅 포인트일 뿐이겠지만 솔직히 이게 너무 예쁘더라구요. 버리지 않고 킵합니다.

 

 

 

피닉스와 필름면을 육안으로 비교해봤습니다. 앞 뒤로 비교해보니 거의 유사한 설계와 유제로 되어 있는 것처럼 색상이 비슷합니다. 같은 기술로 만들어 뒤집은 형태인 게 분명해보이긴 합니다.

 

혹시나 싶어 아예 이어붙여 보았습니다.

 

 

현상전에는 구분이 거의 안될 것 같습니다. ㅋㅋ

 

 

테스트롤을 현상해서 현상된 두 필름을 비교해봤습니다. 

 

 

확실히 피닉스는 핑크 혹은 보라색에 가깝고, 레드는 훨씬 투명하고 마스킹이 연합니다. 레드에 촬영된 네거티브 이미지는 마치 파란 색으로까지 보입니다. 이러면 레드로 촬영된 사진을 스캔해보면 노란 색 계열로 나올 게 분명합니다만 필름 이름은 레드..네요.

 

그리고 계조는 어떨까, 입자감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이전의 피닉스와 유사한 기술과 스타일이라면 계조도 입자감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뭔가 다른 필름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궁금증이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얼른 작업해보았습니다.

 

추운 날씨라 속사로 촬영하기 위해 리코 GR-1v 기종을 사용했고 명동과 충무로 일대를 순식간에 돌았습니다. 주광과 그늘, 실내, 인공조명 등을 골고루 촬영했지만 다 소용없고 꽤 레디시한 모노톤에 가까운 레드스케일 이미지들을 만들어 주었네요.

 

참, 영하 10도에서 종종 뛰어다니며 얼른 찍은 막샷이니까 잘 찍었네 못 찍었네 하시기는 없기 입니다 ㅎㅎ

 

 

 

약간 붉은 톤으로 스캔한 이미지들입니다. 일단 색상만 보면 '레드'해 보이기엔 좀 덜한 것 같습니다. 현상된 네거티브에서 보았던 이미지는 파랑이었죠. 조정하지 않고 그대로 스캔하면 그린톤이 도는 노란 이미지가 나옵니다. 붉게 조절하면 더 예쁜 붉은 톤이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사진들인 것 같습니다. 몇 개만 만져보죠. 그러면 놀랍게도 예전의 레드스케일 필름들에서 본 것보다도 더 예쁜, 아주 예쁜 사진들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조정해보니 더 안정적이고 예쁜 레드톤의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톤이 매우 일정하고, 피닉스와는 완전히 다르게 계조가 매우 풍부하고 명부와 암부를 모두 잘 담아내고 있으며 400을 넘는 고감도일 것임에도 입자감이 아주 곱고 좋다는 점은 서프라이즈입니다. 레드스케일로 발매되었을 뿐이지, 피닉스200과는 아주 많이 다른, 성능이 뛰어난 필름임에 틀림이 없어보입니다.

 

********* 이 부분에서 놓친 게 많이 있었어요. 스캐너에 따라 결과물의 특성차이가 크다는 건데, 계조를 읽어내는 능력, 색을 조합하는 알고리즘에 따라 노리츠, 후지, 코닥, 엡손 및 기타의 스캐너가 전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더군요. 일단 노리츠나 후지 스캐너로는 가능한 작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파노라마나 하프포맷인 경우는 하는 수 없겠지만요 ㅠ ************

 

 

(이 필름을 다시 뒤집어 레드스케일이 아닌 정상으로 촬영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다시 생겼습니다. 이건 제가 한번 더 해보고 결과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한 롤을 마구 찍어보고 내린 몇 가지 판단입니다:

 

- 피닉스를 만든 하만의 자체 기술로 제작되었다

- 새로운 고감도의 컬러필름을 이용했다

- 노출차가 큰 장면에서도 명부와 암부를 고루 담아낼만큼 계조가 좋다

- 100이나 50으로 찍어도 좋을 것 같다

- 더 붉게 레드톤으로 보정하면 더 예뻐진다

- 가격은 조금 아쉽다 

 

 

레드스케일이라는, 독특하고 매니아틱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깜짝 놀랄만큼 좋아진 이 필름 자체의 성능때문에 후속작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게 만드는 필름인 것 같습니다.

 

2025년 2월12일 수요일에 정식 발매 예정이라고 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구매해서 찍어보세요. 이 장면이 이렇게 담긴다고? 하는 깜짝 놀람스러운 사진을 만들어줄 필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

 

라고 생각하고 궁금해서 뒤집어서 촬영해봤어요. 해외 유튜버도 해봤더라구요. 과연 어떤 필름을 만들다 말고 뒤집어 감아서 발매한 걸까 싶었는데 결론은 피닉스를 뒤집은 게 거의 맞습니다. -_- 다만 현상된 필름 베이스에서도 구분되는 것처럼 실효감도를 높이기 위해 베이스의 마스킹 코팅을 다르게 했네요. 400으로 촬영했는데 적정에 가까운 노출이 나온 걸 보면 말이죠. 그냥 피닉스를 뒤집었다면 125로 찍어야 했겠죠. 이미지는 대략 피닉스와 비슷하면서 베이스때문에 아주 약간 다른 정도입니다. 쩝.

 

아쉬웠어요 ㅎㅎㅎ

 

 

덧:

 

피닉스가 그랬듯이, 이 필름도 작업에 따라 결과물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직접 스캔해보아도 특성을 아실 수 있을 거구요. 현상소에 맡겨 현상과 스캔작업을 의뢰한다면 또 현상소마다 작업할 때마다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 맡기면 어떻게 나온다 하고 예측할 수는 없지만, 위의 작례와는 아마도 많이 다르게 나올 겁니다. 취향에 따라 어떤 결과물이 좋을지는 다른 분들의 결과물을 참고하거나 아니면 직접 맡겨 보고 판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24. 9. 1. 10:34

<판매완료되었습니다.>

 

포토마루에 8월29일자 Pentax 17 세기정품 3차 물량이 소량 입고되었습니다.

(저희는 전문판매점은 아니어서 많은 물량을 입고하지는 않았습니다)

 

판매가격은 정가 79만9천원이며 현금/카드결제(오프라인) 모두 가능합니다.

포토마루 현상스캔권 여러장을 푸짐하게 사은품으로 증정하니 꼭 챙겨주세요.

(말씀 잘 하시면 그 외의 추가 혜택도 드릴 수 있습니다)

 

 

구입문의는 포토마루 070-8235-4911 혹은 인스타그램 @fotomaru.lab DM으로 주시면 됩니다.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24. 7. 1. 01:32

 

 

오랜만에 카메라 이야기를 써 봅니다. 새로 나올 카메라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잠시 만져보고 딱 한 롤 찍어본 소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디지털카메라들이 세상을 주름잡던 2000~2020년대까지도 필름카메라들이 개발되고 생산되어 판매되었었습니다. 캐논은 2018년이 되어서야 EOS-1v와 EOS-30v를 단종시켰고 니콘은 2020년에 들어서야 F6의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생산은 훨씬 더 이전이었을테고 재고판매의 종료였겠지만, 그 때까지도 신품 필름카메라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캐논이나 니콘이라는 일본의 대중적 브랜드 외에도 실은 후지필름도 GF670이라는 중형필름 카메라를 2014년까지, 일본의 코시나도 Voigtlander나 ZeissIkon 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만들어내고 판매했습니다. 명품카메라 브랜드인 독일의 라이카는 M7과 MP 그리고 M-A를 판매, 2022년에는 M6를 복각해내기도 했고, 그 중 MP는 2024년 현재에도 신품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는 일회용카메라, 그리고 토이카메라라고 불리는 간단한 메커니즘을 가진 플라스틱 다회용 카메라류가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죠.

 

하지만 새로이 설계되고 개발되는 신모델이 등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AI가 등장해서 인간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한 21세기 하고도 20년도 지난,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새로운 필름카메라를 만들겠다!는 발표가 일본에서 나옵니다.

 

펜탁스 Pentax는 일본을 대표하는 카메라 브랜드였지만 2008년 호야 HOYA에 인수되었다가 다시 2011년 리코 Ricoh에 인수합병되었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는 리코보다 펜탁스가 더 인지도 있는 브랜드였기때문에 리코가 펜탁스를 인수했을 때 적잖이 놀랐었는데요, 사실 리코도 GR이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유명기업이었죠.

 

회사들의 역사나 자료에 대해서는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생략하구요.

 

이 리코가 펜탁스 브랜드로 새 필름카메라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아사히펜탁스로 여러 시대를 풍미했고 깊고 넓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필름시대의 향수를 적극 이용하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번 두루뭉술한 소식들이 유출(?)되거나 티저가 발표되면서 궁금증을 더해갔습니다. 정말 만드는 거야? 혹시 시장 반응을 보려고 떠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몇 달 간격으로 티저가 발표되면서 진짜 만드는구나 하는 확신들을 갖게 되었고 이윽고 몇 가지 구체적인 내용들이 밝혀지면서 기대와 실망이 오가게 되었습니다.

 

- 풀프레임이 아닌 하프판형일 것이다

- 풀사이즈의 SLR이나 레인지파인더가 아니라 P&S일 것이다

- 오토포커스가 아니라 목측식일 것이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2020년대라면 필름카메라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최신 기술들을 다 넣어 엄청난 모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다들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저 사양과 기능으로 지금의 디지털카메라나 혹은 심지어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맞짱뜰 수 있다고?

 

그리고 지난 달, 실물의 모습이 유출되었습니다. 보통 유출은 비공식 사전 실물공개를 통한 홍보작전의 일환으로 느껴지는 게 대부분인데, 이 유출은 진짜 유출이었던 듯한 충격적인 비쥬얼이었어요.

 

 

 

 

 

 

 

 

새로 개발되어 나오는 카메라에 대한 기대는 뭐랄까, 최신의 그 무엇이었으면 했는데, 크기도 작지 않아 보이고 재질은 플라스틱처럼 보이고, 양쪽으로 갈라놓은 파인더의 기괴한 모습, 둥글게 튀어나온 그립부, 세련되어보이지도 않고 어중간해 보이는 바디라인, 3.5라는 아쉬운 밝기... 이 사진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6월16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실제 제품이 공개됩니다. 많은 의구심들이 해소되는 순간이었어요.

 

 

 

유출된 사진이 너무 포토제닉하지 않아서 생겼던 오해였달까요. 오히려 너무도 클래식한 디자인의 상판을 포함한 전체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다시 구매욕을 가지게 되신 것 같습니다.

 

저에겐 꽤나 멋지고 괜찮아보입니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판매에 돌입하면서, 초기 주문수량이 생산량보다 너무 많아서 며칠만에 주문예약을 닫고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미국내 판매가격은 499.99달러, 환율을 대충 1400이라고 하면 70만원 가량인데 어쩌면 정말 무리하지 않은 적당한 가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례로 볼 때 제가 예상하는 국내 판매가는 85만~95만원 사이 정도일 것 같습니다. 아님말구)

 

실은 전세계 대상 발표 및 판매가 개시되던 6월16일 이전에 이미 한국에 초호 테스트기가 들어와 있었고 수입사인 세기P&C에서 촬영하셨던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해보았었습니다만, 엠바고 때문에 발설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략의 화질,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정도였죠. 그리고 아직도 국내 판매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만, 지난 주초에 전시품이 진열되어 직접 만져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테스트 촬영을 위한 대여는 불가능했는데, 일본 펜탁스에서 직접 직원이 방한하여 같이 미팅을 가지면서 테스트 촬영을 위한 대여를 부탁드렸고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필름 한두 롤 정도는 찍어볼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멀리는 못 가고 충무로 일대를 한바퀴..

 

내심 컬러, 흑백을 다 찍어보고 싶었는데 70여 컷 속사 촬영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ㅎㅎㅎ 결국 컬러필름 1롤만 촬영완료하고 반납했습니다.

 

촬영에는 포트라 400을 사용했습니다만, 포트라는 낱개 종이포장이 아니어서 필름태그를 넣을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컬러플러스200 필름의 태그를 넣어봤습니다.

 

예쁘다!

 

 

 

펜탁스(리코)의 담당직원 겐이치로 상이 보여준 프로토타입과 시판기를 비교해봤습니다. 디자인이나 기능은 대동소이하지만 상판 다이얼이나 파인더 상부의 레터링 색상 등이 다른 것을 보면 마지막까지 무척이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충의 외관과 기능을 살펴봤습니다.

 

완전히 정면에서 보는 건 조금 덜 멋져요. 상판이 같이 보여야.

 

상판은 마그네슘 재질이고 전면에는 아주 약간 푹신한 인조가죽을 붙였습니다. 뒷면은 그대로 플라스틱입니다.

 

이런 정도의 각도에서는 꽤 멋져보입니다.

 

 

최소초점거리 25cm(꽃모양)에서 무한대(산모양)까지의 목측식 초점입니다.

 

파인더를 따로 배치하지 않고 렌즈 바로 위에 두어 시차를 최소화했고, 목측식 초점링을 돌려 적당한 거리에 맞추도록 하면서도 눈을 떼지 않고 파인더 안에서 초점 표시 모양 아이콘들이 바로 보이도록 설계했습니다. 앞 뒤의 나사들은 일부러 십자가 아닌 1자 모양을 이용해서 클래식한 느낌을 더했다고 합니다.

 

파인더 안에서 바로 이렇게 보입니다.

 

코닥의 일회용 카메라인 펀세이버와 나란히 크기를 비교해봤어요.

 

펜탁스 HD 렌즈는 이제까지 가장 최신의 P&S인 에스피오 미니에 사용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초점거리는 25mm 니까, 35mm 풀프레임 환산으로는 약 37mm 정도가 됩니다. 밝기는 F3.5이지만 목측이란 점을 고려해볼 때 오히려 너무 밝아서 초점이 많이 나가는 것보다는 나아 보입니다. 요즘에는 필름 제조기술이 좋아져서 가장 흔히 사용할 수 있는 필름의 감도가 대개 200부터 시작하니까, 실제로는 F1.8 정도와 비슷한 정도의 셔터속도를 사용할 수도 있구요. 필터 사이즈는 40.5mm 인데, 목측식이지만 특이하게도 실제 동작메커니즘은 반셔터를 눌렀을 때 해당 초점 위치로 이동하는 전동 방식이라 렌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렌즈캡 또는 UV필터를 꼭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반셔터를 누르면 비로소 목측식 초점위치로 렌즈가 구동됩니다.

 

 

전통적인 PASM이나 장면모드가 아니라, 밝은 곳(흰색), 어두워서 플래시가 터질 곳(노란색)의 직관적 모드다이얼을 만들었습니다. 감도 설정도 다이얼로 직관적이고, 노출보정도 다이얼로 바로 됩니다.

 

전동식으로 필름이 자동으로 감기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을 위해 와인더를 설계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날로그 시절의 기술자들이 나이를 먹고 이제는 거의 퇴사해서 기술을 복각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와인더는 펜탁스 P30의 메커니즘을 가져왔다고 하네요. 스트랩 고리는 좌우 그리고 아래쪽에 더 있어서 가로로 혹은 세로로 다양하게 맬 수 있습니다. 뒷면의 태그홀더는 굳이 고집해서 만들어 붙였다고 합니다. 이게 비용이 상당히 들었다고.

 

필름실 안쪽을 보아도 매우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CR2 배터리 1개를 사용하는데, 오토포커스와 필름 와인더가 없어 무척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필름을 로딩할 때는 조금만 당겨서 퍼포레이션에 와인딩 롤러의 톱니가 걸리는 것만 확인하고 뒷뚜껑을 닫으면 됩니다. 두 컷쯤 공셔터를 날리면 카운터의 S가 되고 바로 촬영이 시작됩니다.

 

 

전원스위치는 셔터에 붙어 있고 반셔터를 누르면 노출이 부족할때 빨간 불, 와인딩을 안 해서 셔터가 장전되어 있지 않으면 아래쪽에 파란 불이 들어옵니다.

 

펜탁스 직원인 겐이치로 상에게 왜 하프 포맷으로 만들었냐고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새로운 카메라를 설계하려는 방향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일본내에서 다양한 연령층에 설문과 시장조사를 진행했고, 젊은 세대와 기존 사진 세대(나이든 세대)간의 의견은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겐이치로 상의 답은 이랬습니다.

 

-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35mm, 하프, SLR, P&S, 중형, 파노라마...)

- 필름 가격이 많이 올라 같은 필름으로 더 많이 찍을 수 있는 편이 낫다는 분들이 많았다

- SNS와 휴대폰 촬영 등에 익숙한 세대는 가로보다 세로포맷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쉽고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편리함과 간단함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를 더 했습니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처음 내놓은 제품이다, 이 제품의 시장 반응과 성공여부에 따라 본격적인 기종들을 계속 개발하고 내놓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단, 지금까지의 반응은 무척 폭발적인 것 같습니다. 없어서 못사는 상황은 고무적입니다. 

 

포트라400으로 촬영한 몇 컷을 첨부해봅니다.

 

하프판이어서 2in1 혹은 싱글컷으로 스캔이 가능합니다.

 

측광이 TTL(렌즈를 통한 노출 측정)이 아니라 렌즈 상단의 센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듯, 밝은 쪽을 향할 때 암부의 노출이 부족한 경우들이 꽤 있었습니다. 가능하다면 +1 스톱 정도 노출보정을 염두에 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겐이치로 상은 '최신의 렌즈라서 화질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하프판이어서 사실 성에는 안 차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쨍한 스마트폰과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에게 차고 넘치는 아날로그적 감성(입자감, 컬러, 흑백 등)을 만끽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목측은 재미있었지만 원하는 곳에 충분히 초점을 맞출 수 있으려면 조금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초점이 조금 덜 맞아도 나름의 감성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ㅎㅎㅎ

 

 

<막샷들입니다. 포트라400으로 촬영했고 노리츠 기종으로 스캔했습니다.>

 

BOKEH 모드(최대개방)로 찍으면 배경흐림도 나름 훌륭하네요.

 

초점을 잘 맞추면 충분한 입체감을 살려줍니다.

 

 

 

 

 

 

 

최근접. 음식 사진 찍기 정도에 적합해보입니다.

 

 

 

 

사*집 박과장님 넘 유쾌하고 좋으십니다.(게재허락 득)

 

이왕 실어드리는 김에 플래시 테스트샷도... 플래시는 광량도 적당하고 노출도 잘 잡아줍니다.

 

 

가로로 쌓는 프레이밍은 하프포맷에선 그다지 활용이 쉽지가 않습니다.

 

 

 

좌측이나 우측에 검은 테두리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와인딩이 수동이어서 컷간 간격이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그런 이유로 스캔단계에서는 좌측이나 우측으로 조금씩 밀리거나 혹은 이렇게 아예 좁아서 양쪽으로 남기도 합니다. 이런 것조차 감성으로 접근한다면 뭐 그러려니 하는 정도일 수 있겠습니다.

 

필름 사이즈가 하프포맷이라 아무래도 화질의 한계는 있습니다. 첨단의 선예도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듯합니다. 컬러는 화려하기보단 무난하지만 색들을 잘 살려주는 느낌입니다. 세로 프레이밍은 금방 적응되고 편안합니다. 카메라는 매우 가볍지만 필름과 배터리를 장착하면 들고 촬영하기 적당하고, 그립부는 들고 촬영하는 데 매우 편안합니다. 오히려 하프판이어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필름값 걱정 없이 마구마구 찍어도 부담없는 느낌입니다. 계산상으로는 36컷의 2배니까 72컷을 찍을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필름의 여유부분 때문에 79컷이나 촬영했습니다.

 

Pentax 17을 구입해서 촬영한다면 아마도 2in1 보다는 한 컷씩 스캔해서 따로 따로 70여 컷을 사용할 것 같습니다.

 

국내 출시는 7월중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가격은 위에서 예상한 범위였으면 싶습니다. 이왕이면 저렴했으면 좋겠네요. 출시 날짜와 가격 등이 정해지면 업데이트해보겠습니다. 다만 초기 주문량이 너무 많아 생산량이 따라가질 못해서 한국에는 몇 대나 수급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오픈런하는 거 아닌가

 

여기까지, 기대가 큰 Pentax 17 한롤 사용기였습니다.

 

참, 17은 하프판의 필름사이즈인 17mm 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