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17. 8. 26. 16:51

니콘에서 풀프레임 DSLR 신제품 D850을 발표했습니다.



여러가지로 니콘에 대한 안 좋은 소식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래도 100주년이라고 이런저런 이벤트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아무튼 D850이라는 4천5백만화소나 되는 이미지를 찍어내는 새 DSLR이 발표됐습니다. 대세역행인가요


이런저런 다른 여러가지 이슈는 뒤로 하고, 이 D850에는 꽤 재미있는 기능이 탑재됐는데, 바로 필름카피어 기능입니다. 필름을 촬영해서 색상을 반전시켜 제대로 된 색상의 사진을 얻어낼 수 있게 해주는 기능입니다.



출처: 니콘이미징코리아



설명에서 소개된 것처럼 ES-2라는 필름카피 어댑터를 이용해서 필름 홀더에 필름을 끼우고 60mm 마이크로렌즈(아, 이 렌즈가 또 필요하네요. 1:1 접사가 가능한 니콘의 마크로 렌즈죠)를 이용해서 필름을 촬영하면 카메라 자체에서 촬영된 이미지를 반전시켜 제대로 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새로 나온 ES-2 필름카피 어댑터. 이전 버전은 ES-1이었는데 그다지 큰 차이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실 니콘은 필름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있던 기업이었습니다.


진작부터 상당한 품질을 보여주는 개인용 필름스캐너들을 만들었었고, 무려 1990년 니콘 최초의 필름스캐너인 LS-3500을 필두로 죽여주는스캔(Coolscan)이라는 라인업의 필름스캐너들을 상당기간 만들고 판매했었습니다. 아직도 데스크톱 필름전용 스캐너들인 4ED 5ED를 비롯(이전의 스캐너들은 LS- 라는 모델명이 붙었었지요), 4000ED 5000ED 8000ED 9000ED에 이르는 전문가용 필름스캐너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이 현역에서 사용하고 계십니다. 물론 시대가 2017년이다보니 이미 오래전에 단종되어 그 이후의 기종들은 더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이 눈으로 바로 제 색상으로 보이는 포지티브(슬라이드) 필름이 아닌 일반적인 컬러필름과 흑백필름은 필름에 맺힌 상이 역상(네거티브)이어서 정상의 이미지를 얻으려면 반전시키고, 적절한 색보정을 거쳐야 합니다. 컬러네거티브 필름은 컬러인화시의 부정색성을 제거하기 위해 오렌지색으로 베이스가 착색되어 있어 그냥 반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제 색상을 얻을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면 적당한 루틴을 만들어서 반전시키고 오렌지색을 적당히 제거하고 컨트라스트를 조절하는 공식을 적용하면 되겠다 싶지만, 필름 제조사마다 그리고 필름마다 오렌지 마스킹의 농도와 색상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필름마다의 상태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라서(아날로그라서죠) 어떤 하나의 정해진 공식으로 필름마다의 제 색상을 추출하는 게 쉽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름으로부터 읽어들여진 오렌지색 베이스의 색상을 반전시키고 정상의 색으로 조정해내는 알고리즘도 필름스캐너의 소프트웨어가 가져야 하는 덕목이고, 이것을 얼마나 잘 해내는가에 따라 스캐너로부터 얻어진 이미지의 색상이 좋은가 아닌가 하는 품질의 잣대가 됩니다. 잘 알려진 필름스캐닝 소프트웨어인 실버패스트라든가, 뷰스캔도 이런 부분에서 자체적인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죠. 만일 이 알고리즘이 손쉬운 것이라면 스캐너 제조사들마다 스캐너와 함께 판매하는 니콘스캔이나 엡손스캔같은 소프트웨어만으로도 너무 충분하고 넘칠테니까요.


제가 자꾸 니콘 카탈로그에 '필름 디지타이즈 어댑터'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필름카피 어댑터'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제품이 처음 나온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름을 필름으로 촬영해서 복사하는 것, 즉 필름카피는 예전에도 있었고 많은 필요에 의해 행해지던 작업이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필름으로 촬영된 영화를 영사하기 위한 영사본 필름을 만들려면 원본 필름을 촬영해서 다시 필름으로 만들어야 하고 상영관에 배급되는 수만큼 복사본을 많이 만들어야 했죠. 그 때도 필름으로 필름을 촬영하는 식이었습니다. 디지털이 없던 시대니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촬영하는 피사체를 다시 필름에 실제와 같은 크기로 담아낼 수 있는 매우 우수한 화질, 그리고 왜곡이 없는 접사용 렌즈가 필요했었고, 그게 바로 1:1이라고 부르는 실물스케일 촬영용 렌즈, 즉 60mm micro 라는 렌즈였던 거죠. 그래서 캐논이나 미놀타와 같은 다른 회사에도 1:1 접사용 매크로 렌즈들이 이런 목적으로 다들 라인업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런 필름 카피 방식을 이용한 필름의 디지타이징 방법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필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필름을 비추어줄 광원이 필요하고, 그 광원을 고르게 펴서 분산해줄 디퓨저, 그리고 카메라로 들어올 때 잡광을 없애줄 경통, 그리고 카메라와 렌즈를 고정할 장치가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개인이 자작하기도 했죠. 꽤 많은 분들이 프링글스 통을 경통으로 사용해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Gariz 님의 제품도 이것과 유사한 구성으로 상품화되어 판매되고 있으니 구입도 가능할 겁니다.



검색해보면 엉성하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하는 자작 어댑터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자작 필름카피어의 모습. 광원으로는 플래시를 썼네요. 

출처: "How to Scan Film Negatives with a DSLR" https://petapixel.com/2012/05/18/how-to-scan-film-negatives-with-a-dslr/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가 한창 발전하던 그 무렵 니콘에서도 ES-E28이라는 필름카피 어댑터를 발매해서 많은 분들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28mm 필터사이즈의 렌즈를 탑재한 니콘의 쿨픽스 950, 990, 995나 4500시리즈같은 카메라에는 카메라 자체에서 촬영하는 필름을 정상으로 보여주는 필름카피 모드가 탑재되어 있기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쿨픽스4500에 장착한 ES-E28 필름카피 어댑터의 모습. ES-2와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네요.



그러니까 사실은, D850이라는 최신의 괴물같은 DSLR에 이런 구시대적인 유물(!)스러운 기능이 탑재되었다는 점이 새삼스럽고 신기한 것이지, 어떤 대단한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거나 한 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D850에 필름카피(스캔) 기능이 탑재된 것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우선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이미지의 크기입니다.


기록화소수 4,544만 화소, 가로세로 8,256 x 5,504 픽셀.


얼마만한 해상도가 되는 걸까요? 계산해보죠. 36x24mm 크기의 35mm 필름은 환산하면 1.4173 x 0.9448 인치입니다. 8256/1.4173 = 5825 즉 5800dpi로 스캔하는 정도의 사이즈로군요. 현재 상용화되어 판매되는 가장 큰 해상도를 가진 스캐너인 Imacon이 광학 8000 dpi인데, 간단한 장치로도 무척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학해상도를 가진 필름 카피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미지 크기를 보통 이야기하는 '메가 수'로 따지자면 130MB 정도가 되네요. '이마콘으로 130MB 용량으로 8bit스캔하는 크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RAW로 촬영해서 16비트로 저장한다면 두 배 용량이니까 260MB가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장점이자 놀라운 점은 속도입니다. 이마콘으로 130MB를 스캔하려면 꽤 시간이 걸립니다. 이걸 D850은 '찰칵'으로 해결하고 맙니다. 개인용 스캐너를 사용하고 계신다면, 니콘의 4000dpi나 혹은 엡손 평판형 기종들의 최대해상도로 한 컷을 스캔할 때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생각해보시면 비교가 될까요.


그리고 세째로 위의 자작 필름카피어 "How to Scan Film Negatives with a DSLR" 기사에서처럼 촬영한 오렌지색 이미지를 반전하고 색을 잡는 과정이 필요없이 D850 자체에 탑재된 기능으로 바로 정상 색상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매우 편리한 점입니다. 그러니까 홀더에 끼우고 찰칵, 하면 바로 5800dpi로 스캔된 130MB짜리의 거대한 스캔 이미지를 얻는 셈입니다.


........ 그런데 장점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단점을 얘기해보죠.


- 불편함: 홀더에 필름을 장착하고 한 컷 촬영한 뒤 다음 컷을 촬영하려면 손으로 직접 홀더를 밀어줘야 합니다. 모든 것이 수동 조작이고 자동으로 되는 게 없습니다. 하긴, 필름스캐너들도 이렇게 수동으로 조작해줘야 하는 것들이 있으니 사실 어마어마한 불편까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 수평/크롭 등 조작의 문제: 카메라 안에서 이미지가 정상으로 반전된다는 점에 비추면 약간 뭔가의 보조적 장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홀더에 필름을 장착하는 과정이 수동이기때문에 약간씩 상하좌우로 정확히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카메라에 촬영된 필름의 이미지가 완벽히 100%가 아니거나 혹은 상하좌우로 오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자리의 검은 여백이 더 찍힐 수도 있구요. 어떤 분은 그런 문제때문에 미세하고 정확한 수평 잡기가 매우 어렵다고도 하시더군요. 물론 나중에 이미지를 회전시키면 되기는 합니다만 상당한 스트레스일 수도 있습니다.


- 광원의 문제: ES-2 역시 광원은 탑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뒷면에서 무언가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위의 자작 어댑터처럼 플래시를 사용할 수도 있고, 가정용 스탠드를 사용해도 되고, 주광을 얻기 위해 낮에 햇빛을 보아도 되기는 합니다만 역시 균일하고 완벽한 광원을 사용하는 것은 꽤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필름 스캐너에는 전용의 고른 광원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색상이 정확하게 튜닝되어 있거든요.


- 초점의 문제: 화소수가 커지고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정확한 초점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필름이 편평한 것 같지만 접사모드에서 미세한 거리차때문에 생기는 이미지의 소프트함은 큰 문제가 됩니다. 홀더에 장착된 필름의 가운데와 주변부, 혹은 초점이 맞은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의 해상력 차이는 이 시스템이 가지는 치명적 문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미지 그대로의 유효한 해상력을 다 보장하지 못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마콘이 특허로 탑재한 가상드럼방식은 괜히 개발된 게 아니니까요.


- 먼지제거기능: 중급 이상의 개인용 스캐너들에는 대개 ICE라는 하드웨어적 먼지제거기능이 탑재된 것들이 많습니다. 필름을 스캔할 때 나타나는 먼지를 포토샵에서 일일이 지워보신 분이라면 스캐너에서 자동으로 먼지를 제거해주는 기능이 동작할 때 그게 얼마나 유용하고 또 편리한 것인지 아실테죠. 해상도가 높아서 이미지가 커지면 커질수록 작은 먼지도 더 크게 보이기때문에 지워주어야할 먼지도 작업의 난도도 올라갑니다. 8천x5천 픽셀짜리 이미지를 포토샵에 띄우고 먼지를 도장툴이나 힐링브러시로 지우는 작업을..... 아아.


- 다른 판형에 대한 대응: 일단 ES 시리즈의 필름카피 어댑터들은 35mm 필름의 일반적 판형에만 대응합니다. 하프판은 크롭하면 되니까 괜찮겠지만 X-pan과 같은 파노라마에는 대응하지 못합니다. 또 중형이나 기타 판형에도 대응하지 못하네요. 약간 더 거리를 두어 화면에 꽉 차게 촬영하는 방식으로 제작하면 자작 어댑터로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판형이 커지면 균일한 광원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는 합니다.


- 실버패스트와 같은 우수한 색재현 스캔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카메라 바디 내의 색상 변환에 의존해야 하니까요.


B&H 에 뜬 ES-2의 프리오더 가격을 보니 약 140불 정도나 하네요. 약간 아쉬운 가격입니다. ㅠㅠ



따지고 보면 '필름스캐너'라는 것도 역시 이런 필름 촬영(혹은 복사기처럼 선형 판독)으로 얻어진 디지털 이미지를 반전하고 변환시키고 하는 전용의 장치인 셈이죠.


이 장치와 기능이 꽤 좋은 평을 얻는다면 좀더 발전된 형태로 뭔가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필름이 한 컷씩 자동으로 이송되고, 한 컷씩 한 컷씩 셔터까지 착착 눌러주면서 한 스트립 혹은 한 롤 전체를 자동으로 촬영해주는 자동이송/롤스캔 어댑터라든지...


물론 그래도 나중에 색상보정/크롭-회전/먼지지우기... 이런 것들은 피할 수는 없겠군요. 카탈로그에서 '간단히'라고 했는데 글쎄요.. ㅠㅠ



총평: 이런 발달한 디지털 이미징 시대에 최첨단의 DSLR이 필름을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또 한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 같은 새삼스러움입니다. 필름을 이용하기 위한 또다른 어떤 제품이 새로 선보일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필름카피어를 사용하는 것은, 예전에도 사용해 본 경험에 의하면, 그리고 어떤 분의 말씀처럼.. "도 닦는" 일에 가깝습니다. 물론 필름 스캔이 일종의 도 닦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하시면 그것도 맞을 것 같습니다. ㅎㅎ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