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18. 3. 11. 11:42

일포드Ilford XP2 400 내장 일회용카메라


어제는 일회용 카메라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낮시간이라고는 했지만, 그리고 400짜리 감도를 가진 필름이 들었다고는 했지만, 물경 열 개가 넘는 카메라에서 단 한 컷도 노출이 부족해서 건지지 못한 사진이 없었네요. (네거티브니까 몇 스톱 정도 오버된 컷들은 거의 다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일회용 카메라들은 영어로는 'film with camera'라고 쓰여져 있곤 합니다. 필름값과 카메라값, 그리고 들어 있는 배터리값을 다 포함한 가격으로 팔리는 셈입니다. 그러니 카메라가 매우 저렴한 가격의 물건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토이카메라류도 그렇지만 대개의 일회용 카메라들의 광학부는 1군 1매짜리의 플라스틱 렌즈로 되어 있습니다. 정말 드물게 초광각버전 같은 경우 1군 2매짜리는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일포드의 XP2가 들어 있는 이 카메라 역시 플라스틱 소재의 1매짜리 렌즈가 끼워져 있습니다. 화각은 대략 30mm, 그리고 조리개는 스펙상 9.5라고 되어 있지만 뭐 아무튼 그 정도. 초점은 과초점 존포커싱으로 아마 1미터 밖으로는 다 맞는 팬포커스. 셔터는 1/100초 정도. 주변부 화질은 열악하지만 중심부는 비교적 퍽 쨍하게 잘 나옵니다. 일회용 치고는 계조도 좋고 선예도도 충분합니다.

셔터는 대개 얇은 금속막 2매에 스프링 하나 정도로 이뤄져 있는데 셔터를 누르면 팅 하고 열렸다 닫히는 속도가 1/100초 내외가 됩니다. 기계적으로 매우 간단한 구조여서 누를 때마다 대략 그 정도의 셔터속도로 노출이 됩니다만 어쩌면 때로는 1/90일 수도 있고 때로는 1/110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필름이 네거티브이니까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ISO400, F9.5에 1/100초면 맑은 날 낮에 찍으면 잘 나오는 정도에서 한두 스톱 오버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F8에 1/30초 이하의 셔터가 필요한 그늘쪽에서도 꽤 충분한 암부 디테일이 담긴 사진들이 만들어집니다. 플래시 광량은 약한 편이지만 오버되지 않고 매우 자연스러운 사진을 만들어줍니다.


열 분이 넘는 인원이 각각 하나씩 카메라를 나눠 갖고 흩어져 자유롭게 촬영하고 다시 모아 현상했는데, 찍는 분들이 조리개와 화각과 감도에 대한 설명을 미리 다들 들었다고는 하지만 카메라가 꽤 괜찮았다는, 일회용 카메라도 이 정도면 진짜 쓸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스펙상 27컷이지만 실제로는 30컷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컷은 절반 정도만 찍히니 주의. 양손으로 잡고 찍을 때 손가락 나오기 쉬우니 주의. 어두운 곳이다 싶으면 아끼지 말고 플래시를 터뜨리는 게 좋습니다. 배터리도 돈 주고 산 물건인데 안 쓰면 아깝죠.


그리고 흑백이지만 컬러현상(C41)으로 작업되므로 특별히 흑백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현상소를 찾지 않아도 필름을 현상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작업이 가능합니다. 현상/스캔 비용도 일반 컬러필름과 같구요. (일포드에는 본격 흑백필름인 HP5같은 것을 내장한 일회용 카메라도 있습니다)


다만 개당 1만7천원 더하기 현상/스캔비용을 합치면 2만원이 넘는 총 소요비용이 아쉽지만, 30컷이므로 컷당 700원대의 비용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Instax나 폴라로이드류보다는 한참 저렴하고 쓸만한 사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는 끄덕끄덕..




왼손 손가락 나오기 쉬우니 주의하세요.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8. 3. 1. 22:04


Ferrania P30 Alpha 필름 소개



Ferrania는 매우 역사가 오래된 이탈리아의 필름 메이커였습니다. 1923년에 설립됐고 이런저런 역사와 풍파를 겪으며 필름을 만들어 팔아왔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필름을 써본 분들이라면 혹시 솔라리스 필름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Ferrania의 대표상품이었던 Solaris 컬러필름. 100, 200, 400, 800 필름이 있었습니다. 솔라리스 상표 외에도 OEM의 형태로 다른 브랜드로 판매되기도 했는데, 유럽쪽에서는 삼성의 상표로 팔리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필름시장이 쇠퇴하면서 경영이 악화됐고, 2009년에 문을 닫게 됐습니다. 앞서 2007년에는 헝가리의 필름과 인화지 제조사 Forte도 문을 닫았었습니다. (참고: 폐허가 된 포르테 공장 모습 https://www.lomography.com/magazine/323481-in-memory-of-the-forte-factory )


그러던 Ferrania가 2013년에 기존의 공장과 제조설비를 재인수하면서 다시 부활해서, 2015년에는 '필름을 재생산하겠다'면서 킥스타터에서 펀딩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도 #filmisnotdead 태그가 유행하면서 다시 필름 포토그래피가 살아나려고 꿈틀대기 시작하던, 그 무렵이었습니다. 2016년 초에는 필름을 다시 생산해서 공급하겠다고..


그런데 펀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는데도, Ferrania의 진행상황은 어느 순간부터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몇 달이나 아무런 진행도 소식도 없자 backer들은 Ferrania의 사이트에 '뭐라도 좋으니 그냥 아직 안 죽었다고 글자라도 적어달라'는 등의 하소연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의 침묵기를 거쳐 '공장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는 두루뭉실한 동영상 업로드 같은 조금은 의심스러운 업데이트가 있고 나서, 2017년 2월에 P30 이라는 흑백필름을 재발매하기에 이릅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주로 저가형의 솔라리스를 생산해서 판매했었지만 옛날에는 흑백필름도 생산했었는데, 그 필름이 P30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복각인 셈이죠.


저도 소식은 들었는데 생산량이 많지는 않아 우선 킥스타터 backer들에게 먼저 공급하고, 온라인을 통해서만 판매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직접 사용해보지는 않더라도 현상의뢰가 들어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2017년 중반 즈음 이 필름을 실제 구매하신 분을 뵙기는 했지만 2018년이 되어도 현상의뢰는 들어오지 않아 직접 구매해보았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미국/캐나다와 유럽을 위한 사이트가 있는데, 미국쪽에서는 8.5달러, 유럽쪽에서는 8.5유로에 판매합니다. 미국쪽에서 구입하는 게 유리하겠죠. 또 한 생산량이 많지 않아 한 번 주문에 1인당 최대 10롤까지만 판매합니다. 국제배송은 하지 않으므로 배대지를 써야만 합니다. 미국발 구매 사이트는 http://www.filmferrania.com 입니다.(가끔 품절되기도 합니다. 재입고에 몇 주 정도 걸리고 그러네요)



보통 필름 패키징들은 이렇게 종이상자에 풀칠로 밀봉되어 있는데, P30은 잘 접혀 넣어진 형태여서 그냥 박스를 열어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Panchromatic(전색감응) 흑백필름이고 감도는 80입니다.


2017년~18년 무렵에 세상에 다시 선보인 흑백필름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Agfa 브랜드로 APX가 다시 발매됐고, Japan Camera Hunter에서 JCH StreetPan, Bergger에서 Pancro 400 이란 필름을 내놨었습니다. 일본 오리엔탈에서도 Seagull 이란 필름을 내놨었네요. 헌데 이들 필름 중에서 발매사가 직접 제조한 완전히 새로운 필름은 또 몇 종 안 됩니다. 일포드나 Adox 계열의 필름들이라는 게 베이스나 유제의 특성을 보면 발견되곤 하죠. 그래서 사실 이 필름도 직접 보기 전에는 혹시나 직접 만들지 않는, 기만적인 제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살짝 했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열어보았죠.



베이스를 확인하고서야 겨우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새로 만들어진, Ferrania만의 완전히 새로운 필름이다! 라는 것을요.


필름 파트로네에 DX 코딩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감도를 DX로만 인식하는 일부 자동카메라에 사용하면 80의 감도로 사용할 수 없고, 아마도 100으로 촬영될 겁니다.


100으로 촬영해도 문제 없지만, 100의 데이터로 현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필름을 100으로 촬영하셨다면 100으로 현상의뢰하거나, 1/3스톱의 노출부족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해서 약간 노출보정해서 촬영하거나 하면 됩니다. 


저는 빠른 테스트를 위해 리코의 GR1을 이용해서 100으로 촬영하고 XTOL을 이용해서 현상해봤습니다.


Ferrania의 설명으로는 은 성분의 사용량이 매우 많으며 풍부한 계조를 보여줄 거라고 했습니다. 통상 100보다 저감도인 필름들의 특성은 매우 고운 입자와 강한 컨트라스트인데, 그런 특성도 그대로 보이는 듯합니다. 현상된 네거티브는 강렬한 컨트라스트를 보여줬습니다.



그럼에도 암부에서 명부에 이르는 계조는 매우 충실하게 살아 있어서, 실제 활용에 있어서는 깜짝 놀랄만큼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톤은 매우 클래식하며 입자는 아주 곱고 부드럽습니다. 다음번 롤은 약간 감감해서 현상해보아야겠습니다. 퍼포레이션에는 매우 희미하게 Ferrania와 필름 카운터가 imprint 되어 있습니다. 


샘플 컷 몇 장과 함께 소개를 마칩니다.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8. 2. 23. 23:01

T-grain 이라는 입자모양 제어기술 공법을 사용하는 코닥의 흑백 필름에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Tmax100(TMX), Tmax400(TMY), 그리고 Tmax3200(TMZ) 가 그 시리즈였었는데, 코닥이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슬라이드필름을 생산 중단하던 그 해에 TMZ도 함께 생산이 중단되어 더는 판매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TMX와 TMY만 생산, 판매되고 있었죠.


2017년 벽두에 '슬라이드를 다시 생산하겠다'고 소리쳤던 코닥이 2018년 2월이 다 지나도록 아직 그 슬라이드필름은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3월에 TMZ를 재발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여튼 반가운 일입니다. 한동안 감도 3200의 흑백필름은 일포드의 델타3200밖에 없었는데 어찌됐든 코닥이 이 필름을 재발매해준다니, 좋은 소식입니다. 코닥 알라리스 사이트에도 정보가 떴네요.


http://imaging.kodakalaris.com/professional-photographers/photographers/professional-films


엑타크롬 슬라이드는 대체 언제 내놓을까 더 궁금해집니다. 최소한 '언제 내놓겠다'는 얘기라도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만.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