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도'(resolution)는 꽤 오래된 해묵은 떡밥입니다. 보통 DPI(Dot Per Inch)라는 약어로 많이들 얘기하는데, 디지털사진은 물론 필름사진에서도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아주 잘 알고 계시지만 또 많이들 모르고 계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필름사진의 시대가 대략 2000년대 초에 거의 끝났었던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니 레트로의 물결을 타고 다시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 옛날에는 종이에 인화해서 뽑아야 비로소 사진으로 완성됐었지만, 디지털 시대 이후로는 스캔해서 이미지로 만들어야 어딘가에든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길고 지루한 숫자놀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번씩 읽어봐주시면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즐기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DPI의 유래
이것은 프린터 회사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붓이나 펜으로 글씨를 써야 했지만 활자가 발명된 이후로 인쇄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쇄는 많은 양의 똑같은 책을 만들기에는 적합했지만 적은 부수의 다양한 인쇄물을 만드는 데에는 좋지 않았죠. 한편으로는 붓이나 펜을 대체할 기계인 타자기가 발명되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기계에 활자를 박아 하나씩 찍을 수 있게 만든 것이죠. 타자기는 초기의 컴퓨터와 연결되어 문서를 자동으로 종이로 출력해서 하드카피를 만들어주는 데에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알파벳을 넘어 다양한 문자나 기호, 특수문자나 다른 언어와 같은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에 매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여러개의 점으로 글자를 구성하는 도트매트릭스(dot matrix)방식의 인쇄였습니다. 초기에는 8개 혹은 9개의 핀을 일렬로 세워 지나가면서 점을 찍어 글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도 프린터로 유명한 엡손같은 회사에서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 방식은 헤드가 좌우로 지나가면서 종이 앞에 대어진 먹지에 가느다란 핀들이 충격을 가하면 글자가 점점이 새겨지는데, 그러기 위해 핀들이 계속 부딪혀야 해서 찌익~ 찍찍 찌이이익~ 하는 소음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여러장 겹쳐진 명세표를 인쇄하던 그 방식이었죠.
9핀 도트매트릭스로 인쇄된 글자들의 모양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가느다란 핀들을 촘촘히 배치해서 더 세밀한 글자를 인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도트매트릭스 방식으로는 24핀 정도까지 실용화돼서 널리 사용됐습니다. 사실, 48핀이나 72핀 같은 더 세밀하고 우수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이 출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레이저와 잉크분사 방식이었죠.
비슷한 시대에 사무실에 등장한 혁명적 기기가 바로 복사기였습니다. 문서를 유리판 위에 올려놓고 버튼을 누르면 빛이 좌에서 우로 한번 왔다가고 똑같은 문서가 종이에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이전에는 같은 문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크스크린 류를 이용한 등사나 혹은 손으로 베끼는 필사와 같은 방법 외에는 답이 없었죠. 이 복사기는 원본 문서에 빛을 반사시키고 그 빛이 복사할 종이에 비춰지면 글자나 그림의 모양대로 부분부분 뜨거워진 종이에 미세한 입자의 토너를 흘려 순간적으로 녹여 붙이는 메커니즘이었습니다.
레이저 프린터는 원고에 빛을 반사시켜 노광하는 대신 아예 종이에 레이저를 쏘아 같은 효과를 얻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잉크분사식은 도트매트릭스와 같은 방식이지만 핀이 종이를 때리는 게 아니라 미세한 잉크방울들이 튀어나가 종이에 떨어지는 거였죠.
이런 방식을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HP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프린터에 각각 레이저젯(Laserjet)과 잉크젯(Inkjet)이라는 상표를 부여합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잉크젯'은 마치 봉고차, 프렌치프라이, 바바리코트, 포크레인과 같이 상표가 일반명사화한 채 '잉크를 분사하는 프린팅 방식'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잉크방울분사식인쇄 - pigment print - 를 정확히 쓰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DPI의 개념은 이 프린터 메커니즘의 발달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점을 찍어 글자를 구성하기 때문에 점이 정밀하고 작고 촘촘할수록 더 세밀하고 미려한 글자나 그림을 인쇄할 수 있었거든요. 1인치에 몇 개의 점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가 하는 게 바로 인치당 도트갯수(dot per inch)의 개념이었습니다. 8핀 혹은 9핀 프린터는 60 혹은 72dpi 수준이었습니다. 1인치에 72개의 점을 찍을 수 있는 크기의 점들을 사용한 거죠. 24핀 프린터는 8핀에 비해 세 배 조밀했으므로 60 x 3 = 180 dpi 수준이었습니다.
왼쪽(8핀) 오른쪽(24핀)의 글자모양 차이
이 시점에서 레이저와 잉크를 이용한 인쇄장비가 등장했는데, 이 장비들은 핀이 종이를 때려야 하지 않았으므로 매우 조용했습니다. 또 무려 300 dpi를 구현했죠. 레이저 방식의 장비들은 빠르고 품질이 우수했지만 가격이 비쌌으므로 개인보다는 주로 사무용으로, 잉크 장비들은 조금 느렸지만 크기가 작고 저렴했으므로 개인용 프린터로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면서 기존 도트매트릭스 핀프린터들을 대체했습니다.
HP는 300dpi에서 시작했고, 엡손은 기존의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들이 180dpi였던 것을 발전시키면서 360dpi로 출발합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의 더 정교한 프린터들이 HP는 600dpi, 엡손은 720dpi로 나오게 된 것이고 그 이후로도 1200/1440dpi와 같은 숫자의 차이들이 발생했습니다. 기술발전의 단위일 수도 있고, 시장점유율에서 앞서는 HP보다 우리 기술이 더 좋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엡손의 정책이었을 수도 있겠죠. 수십 년이 지난 2018년에는 엡손도 2400짜리 엔진을 쓰고 있기는 합니다.
이 때 만들어진 '300dpi'라는 기준(꽤 오랜 세월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러가지 이유로 마치 이 숫자가 어떤 최소 혹은 필요충분한 크기라고 여겨지는)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폰트(font) 하나를 300dpi로 설계하는 것에 비해 600dpi로 설계하면 가로세로 네 배나 데이터량이 커지고 이것들이 문서를 구성할만큼의 많은 숫자를 가지면 실제로 컴퓨터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저장이나 정보량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HP는 600dpi로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를 만들어내면서 '엔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실제 데이터는 300dpi로 처리하고 프린팅하는 단계에서 더 조밀하게 하도록 디더링(dithering)과 인터폴레이션(interpolation: 보간)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로세로 1인치짜리 그림을 300dpi로 인쇄하려면 300x300 픽셀(pixel)의 이미지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위의 그림처럼 A를 인쇄할 때 더 작고 조밀한 점을 사용해서 오른쪽과 같은 더 예쁜 글자를 만들어낸 것처럼, 네 배 더 작은 600dpi의 점을 이용해서 인쇄하는 것이죠. 그 차이는 디지털적인 보간처리로 메워내고요.
보간(補間, interpolation)은 디지털 데이터를 아날로그로 표시하고자 할 때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디지털 데이터는 실제로는 점들의 값만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그것을 곡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곡선으로 표시해야 하죠. 점과 점 사이의 간격을 매우 좁게 촘촘하게 할수록 곡선에 가까워지고 그것을 더 좁게 더 촘촘하게 하면 완전한 곡선이 되겠죠. 이런 알고리즘을 더 작은 점을 사용할 때 이용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프린터 회사는 데이터 처리는 300dpi로 수월하게 하고 출력은 600, 1200dpi의 촘촘한 점들을 이용해서 미려해보이게 하는 효율화를 이룩한 것이죠.
그럼 대체 300dpi가 언제쩍 얘기인데, 컴퓨터 성능이 이렇게 발전하고 데이터 처리와 저장용량도 이렇게 좋아졌는데 왜 아직도 300dpi에 머물러 있나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습니다. 그건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가장 큰 것은 300dpi면 꽤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300dpi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600이나 1200으로 보간된 이미지를 프린터로 출력해놓으면 실용적 측면에서 꽤 선명하고 충분한 선명도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가로세로 10인치의 이미지를 프린터로 뽑는다고 하면 300dpi일 때 3000x3000 pixel의 이미지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것은 RGB 24비트의 8비트 이미지일 때 3000x3000x3 = 270만, 대략 26mb 정도의 용량이 되고, 이제는 48비트 이미지도 많이 사용하므로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는 50mb가 됩니다. 하지만 네이티브 600dpi를 처리하려면 면적이므로 제곱이 되어 100mb가 아닌 50x4 = 200mb가 되고, 1200dpi로 처리하려면 800mb가 되는 거죠. 현재의 프린터들이 2400dpi 정도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으니 3000x3000 픽셀의 이미지를 네이티브로 처리하려면 10x10인치 인쇄 한 컷에 3.2GB의 용량이 되고 맙니다.
많이들 쓰시는 30x20인치 정도라면 18GB, 40x60인치(1미터x1.5미터)라면 56GB 정도가 한 장을 위한 용량이 되겠네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가 됩니다. 1테라 하드디스크에 이미지 20장을 다 못 넣겠네요. ㄷㄷㄷ
... 용량의 문제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한 셈입니다.
300dpi는 말하자면 실용적 이미지 처리 해상도의 최소 필요점, 혹은 넉넉한 지점 정도가 됩니다.
화면표시의 해상도
이제까지는 프린터 회사들의 기술발전과 dpi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왜냐면 조밀하고 정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출력장치가 프린터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술은 또 발전하고 발전했으니 모니터라는 화상표시장치도 더욱 고성능이 되었습니다. 초기의 모니터들은 그저 글자만 표시하는 데 그쳤지만 IBM에서 개인용 컴퓨터인 PC를 내놓으면서 그림도 표시할 수 있는 CGA(Color Graphics Array)를 내놨고 이것은 320x240픽셀의 해상도에 16개의 색상들 중 네 가지 색을 한번에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애플이나 MSX의 디스플레이들도 훌륭했지만 8비트의 CPU 시대가 저물고 16비트 CPU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시장은 급격히 인텔의 CPU를 사용한 MS-DOS의 것으로 재편됐고 거기에는 720x480픽셀의 고해상도 모노크롬 디스플레이가 주로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640x350 픽셀의 EGA, 1024x768픽셀에 24비트 컬러를 모두 표시할 수 있는 VGA가 나오면서 완전한 컬러 디스플레이의 시대가 됐죠.
프린터와 다르게 모니터는 네모난 발광화소(픽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이것은 프린터와 특성이 많이 다릅니다. 예전의 CRT 모니터들은 한 픽셀이 다시 RGB의 발광소자의 조합으로 되어 있었지만, 현재 만들어지는 패널형 디스플레이들은 작고 네모난 픽셀 하나 하나가 스스로 다른 색상을 냅니다.
모니터의 경우는 프린터보다 상대적으로 가로세로 픽셀 수의 크기(dimension)이 작아서 해상도의 개념을 상대적으로 나중에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종이 인쇄물보다 덜 정교해도 되었죠. 컬러 텔레비젼의 해상도는 훨씬 더 열악했었으니까요. VGA가 발표되었던 시절 1024x768픽셀의 화상을 15인치 모니터에서 볼 때 한 픽셀의 크기는 72dpi 정도였고, 이 정도의 조밀함을 가진 디스플레이라면 사람이 화면에 표시되는 글자나 이미지를 보기에 충분한 편안함을 제공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습니다. 책상(desktop)에 모니터를 두고 약 40~50c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화면을 볼 때 픽셀 하나 하나가 너무 굵게 튀지 않는 정도였던 겁니다. 모니터 디스플레이가 점점 커지고 1280x1024픽셀, 1600x1200픽셀과 같은 더 큰 크기를 지원하는 디스플레이 장치가 나오면서 모니터의 크기도 17인치, 20인치로 커져갔습니다. 더 큰 크기의 모니터가 더 넓은 화면을 지원했지만, 픽셀 하나의 크기는 여전히 72dpi였고, 조금 작은 화면에 같은 픽셀수를 지원하는 모니터는 100dpi 수준이기도 했습니다.
이러던 디스플레이들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모바일이었습니다. 휴대폰은 그 자체로 컴퓨터였으며 통신기기였고 디스플레이였습니다. 1280x800 픽셀 정도의 조밀한 디스플레이가 고작 3~4인치 수준에서 구현되기 시작한 거였죠. 말하자면, 디스플레이도 더욱 크고 조밀하게 생산이 가능했지만 지원하기 위한 그래픽 디바이스들이 받쳐줄 수 없었던 겁니다. 프린터는 한 장을 출력하면 되지만 디스플레이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초당 수십 프레임의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엄청난 용량의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해야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TV 방송도 HD를 거쳐 UHD의 시대가 됐고, 개인용 컴퓨터 화면도 4K를 지나 이제는 8K까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이즈보다 얼마나 조밀한가까지 따지게 된 셈이죠.
프린터 회사들이 점(dot)를 사용해서 해상도의 단위가 dpi가 된 것은 이해가 되는데, 모니터 화면의 점 하나는 프린터의 dot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제껏도 픽셀(pixel)이라고 계속 얘기해 왔죠. 그래서 화면의 해상도를 ppi(pixel per inch)라고도 얘기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해상도의 단위로 조밀도를 얘기하자니 그냥 dpi를 널리 쓰고들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한 다음 메타데이터(이미지마다 기록되어 있는 촬영정보)를 보면 72dpi로 되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72dpi밖에 안 될만큼 열악한 해상도라는 게 아니라, 화면표시용으로 사용할 때의 표준격인 수치인 72를 해당 메타데이터의 빈 칸에 적어 넣어둔 것 뿐입니다. 실제로 의미를 갖는 디지털 이미지의 수치는 가로 세로 픽셀 수인 '몇만 화소'와 '센서크기' 같은 것들일 겁니다.
그리고 애플에서 디스플레이를 내놓으면서 '레티나'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retina는 눈의 '망막'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애플에서는 '이 정도 정밀도의 디스플레이라면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할 수 있는 한계점이다'라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326ppi 정도의 조밀도를 가진 것이었는데, 실제로 인간의 눈은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하지만 그만큼 좋은 거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마케팅 컨셉이었겠죠.
종이 프린트도 디스플레이 화면도 마찬가지지만 무한대로 정밀한 것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의 눈이 구별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은 무의미하니까요. 젊고 건강하고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20cm 이내에서 또렷하게 초점을 맞춰 사물을 볼 수 있고, 그런 경우 충분히 300dpi 이상, 600이나 1200dpi 정도의 정밀도도 구분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그렇게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없죠. 보통은 30cm 이상, 그리고 프린트나 화면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 뒤로 물러나야 전체가 편안히 보입니다. 인간에게는 시야각이란 게 있고 또렷하게 사물을 볼 수 있는 시야 범위가 제한돼 있거든요.
프린트에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만 이미지를 모니터로 볼 때는 100%라는 얘기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이미지의 가로세로 크기가 화면의 픽셀수보다 더 커서 이미지 전체를 볼 때에는 본래보다 축소돼야만 하는데, 화면의 한 픽셀이 실제로 이미지의 한 픽셀로 대응하도록 완전히 키워 일부분만 보게 될 때를 100%로 본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화면은 아직 프린트만큼 조밀하지 않고, 그렇게 조밀하지 않아도 되어서, 이제 100dpi 수준 혹은 그 이상의 해상도를 갖는 모니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정도입니다.
이제 필름 스캔 해상도..
프린터와 모니터 얘기를 하느라 한참 걸렸습니다. 이제 필름사진을 스캔할 때의 해상도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업체에서 일하다보니 가끔은 고객들이 '300dpi로 스캔해주느냐'라고 문의하실 때가 있습니다. 길게 설명해야 하지만 그냥 '네'라고 대답해드리곤 합니다.
dpi는 프린터 회사들이 쓰기 시작한 '1인치에 몇 개의 점을 찍을 수 있나'를 기준으로 하는 조밀도의 단위입니다. 따라서 필름을 스캔할 때에는 조금 덜 맞는 개념이지만 이미 dpi가 해상도를 의미하는 공통된 개념의 단위가 되었기때문에 스캐너 제조사도 운용사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35mm 필름 한 컷의 크기는 알려진 것처럼 36x24mm 입니다(카메라마다 조금씩의 차이가 있습니다). 프린터는 점을 찍어서 글자나 그림을 인쇄하지만 스캐너는 그만한 크기의 점에 해당하는 정도의 분해능으로 상을 읽어들이는 겁니다.
꽤 여러번 반복한 것이지만 또 적어봅니다. 만일 필름을 300dpi로 스캔한다면?
36x24mm는 1인치가 25.4mm 이므로 인치로 환산하면 1.417인치 x 0.945인치의 크기입니다.
300dpi는 1인치를 300개의 점을 찍을 수 있는 해상도로 읽어들이는 거라서, 1.417인치를 300dpi로 읽어들이면 425.1픽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0.945인치는 283.5픽셀이 됩니다.
그러니까 필름을 300dpi로 스캔한다면 425x283 픽셀짜리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웹용으로도 한참 모자라겠네요....;;
300dpi로 스캔해달라구요? ㅎㅎ
물론, 이건 진짜 300dpi로 스캔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충분한 해상도로 작업해주느냐, 메타데이터에 300으로 되어 있어서 포토샵이나 혹은 그밖의 작업을 할 때 불편이 없게 해주느냐의 의미로 문의하신 거라고 해석해야 옳겠죠. (그래서 모든 스캔 이미지의 메타데이터를 300dpi로 세팅해서 출고합니다)
일반적으로 업소에서 작업해주는 이미지는 1000x1500픽셀이거나 혹은 1800x1200, 혹은 3000x2000, 3600x2400 과 같은 크기입니다. 이것은 가로세로 픽셀수이므로 이 자체를 해상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긴 쪽(36mm)을 1.417로 나누어 계산해보면 몇 dpi로 스캔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500/1.417 = 1058 dpi
1800/1.417 = 1270 dpi
2300/1.417 = 1623 dpi
3000/1.417 = 2117 dpi
3600/1.417 = 2540 dpi
스캔해상도가 작을수록 스캔하는 센서가 빨리 움직여도 되고 데이터 처리량도 작으므로 스캔 속도가 빠르고 시간이 적게 걸립니다. 그래서 업소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죠.
업소 말고 많이들 사용하시는 개인용 스캐너의 스펙에 따라서는 어떤가 알아보겠습니다.
이제는 단종되어 신품은 나오지 않지만 많이들 쓰시는 니콘의 쿨스캔 5ed, 5000ed, 9000ed 등은 모두 4000dpi를 지원합니다. 그렇다면
4000x1.417 = 5668이니까 스캔되어 나오는 이미지는 대략 5668x3778 픽셀 정도가 되겠습니다.
엡손의 V700, V800과 같은 평판스캐너들은 6400dpi까지 지원합니다. 음... 니콘보다 더 크네요.
플러스텍의 옵틱필름 120은 5300dpi까지, 8200은 스펙상 7200dpi까지 지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필름스캐너의 끝판왕이라고 알려져 있는 핫셀블라드(Imacon)의 플렉스타잇 스캐너들은 8000dpi까지 지원합니다.
업소용에 비해 개인용 스캐너들이 더 큰 해상도를 지원하는 것은 속도가 느려서 시간이 걸려도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업소용 스캐너들도 위에 적은 것보다는 더 큰 해상도를 지원하지만 업소용임에도 스캔에 시간이 많이 걸려 상업적으로 서비스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평판형 스캐너보다는 필름 전용 스캐너의 품질이 더 좋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수치가 보여주듯 평판형인 엡손의 해상도가 더 큽니다. 그렇다면 품질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요?
디지털카메라에서 꽤 중요한 성능의 지표는 화소수입니다. DSLR 시대를 풍미했던 캐논이나 니콘에서 처음 내놨던 보급형 DSLR이었던 D30은 고작 300만화소, D100은 600만화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도 천만화소를 훌쩍 넘고, DSLR이나 미러리스 디지털 카메라들은 4천만화소를 넘고 있습니다. 휴대폰의 천만화소 이미지는 저 초창기의 D100의 6백만화소보다 월등한 화질을 보여줄까요?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센서의 크기가 클수록 더 화질이 좋다고 합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한 픽셀 한 픽셀이 크기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빛이 많아서 이미지에 더 풍부한 정보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학계 자체가 커서 렌즈의 크기도 커지고 더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다는 점도 또다른 이유입니다. 휴대폰에 달린 작은 렌즈와 센서로도 훌륭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기술이 발전해서 작은 광학계와 센서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를 더 잘 가공해내기 때문이겠지만,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겁니다.
같은 이유로, 필름 스캐너도 약간 작은 해상도를 가졌더라도 필름 전용인 것과 필름과 센서 사이에 유리판이 있는 평판형의 물리적 차이는 쉽게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스캐너에서 사용하는 광학부와 센서, 그리고 이미지 처리엔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이마콘 스캐너의 가상드럼 방식은 그래서 다른 스캐너들이 흉내낼 수 없는 품질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유효해상도'라는 말을 정의하고 싶습니다.
정확히 측정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품질을 기준으로 할 때 수치와는 관계없이 실제 유효한 해상도는 평판형들보다는 전용들이 더 높습니다. 심지어 엡손 평판의 6400보다도 니콘의 4000이 훨씬 더 뛰어납니다.
실제 필름스캐너에서는 단순히 해상도 수치뿐만아니라 해상력, 그리고 색정보를 더 잘 읽어들일 수 있는 척도인 Dmax 등이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며 최종적으로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재현되는 색상이 달라지는 부분까지 모두 고려해야 할 듯합니다.
적당한 스캔해상도의 선택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해상도로 스캔하는 게 좋을까요?
'이루의 필름으로 찍는 사진' 2권에 이런 내용을 적어두었던 2010년 무렵에는 필름에 담긴 최소한의 디테일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1200dpi 정도가 실용적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그 이상의 목적을 위해서는 따로 해당되는 컷들만 더 고해상도로 받아내면 된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는데, 필름이 아날로그적 매체여서 시간이 지날수록 담긴 정보가 변한다는 점입니다. 슬라이드나 흑백필름은 조금 덜하긴 한데, 특히 컬러네거티브 필름은 오래 보관하면 색상이 변하게 됩니다. 이를 막고자 중성속지에 담아두거나 하면 덜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현상소에서 작업되는 C-41RA 프로세스로 고속현상처리된 네거티브들은 빠른 수세 혹은 무수세처리로 인해 약품 성분의 잔류물이 필름에 아직 남아 있게 됩니다. 이 성분들이 속지 안에서 그대로 같이 보관되기 때문에 더 빠른 변질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막 현상된 싱싱한 필름을 가장 성능 좋은 스캐너로 가장 좋은 품질로 읽어들여 디지털 데이터로 보관하는 것이겠지만 비용과 시간, 스토리지의 문제 등으로 현실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필름을 보관해보면 몇 년 정도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그 때까지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위험요소는 습기입니다. 속지 안에서 늘어붙으면 가장 심하게 훼손됩니다. 색상변질은 10년 이내에서도 크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보관하면 필름들에 따라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럼 필름사진에서 얻어진 이미지를 사용할 '목적'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어디에 사용할 사진들인가.
크게 화면용, 인화용, 보존용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화면용은 웹사이트의 갤러리 등에 올리거나 인스타그램 및 페이스북 등에 사용할 이미지
- 인화용은 8x10인치(A4 언저리 크기)나 혹은 더 크게 뽑을 사진들
- 보존용은 최고의 품질로 최대한의 데이터를 뽑아 저장해둘 사진들
모니터 디스플레이가 더욱 고해상도가 되기 전에는 아직은 웹용 이미지들은 1000픽셀 언저리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용으로 사용할 이미지라면 마찬가지로 충분하고 넘칩니다. 페이스북도 이 정도로 충분한데, 다만 페이스북의 경우 이미지를 클릭해서 크게 볼 때 자체적으로 저장하는 이미지의 크기에 따라 화질이 변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2048픽셀로 리사이즈해서 올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므로 화면용으로 사용할 이미지도 이제는 2048픽셀보다는 큰 것이 좋습니다. 1500픽셀급은 이제는 조금 부족한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고해상도로 스캔해두고 작게 리사이즈하는 게 화면에서 더 선명하고 좋은 화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이득보다는 적당한 사이즈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리사이즈해서 맞춘 다음 적절하게 샤픈으로 처리하는 것이 화면에서는 더 선명해 보입니다. 뭐랄까.. 비결은 샤픈에 있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리고 2000픽셀대의 이미지라면 사실 8x10인치급 인화에도 사용할 수는 있어서, 많은 경우에 충분하기도 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면용 이미지: 최소 2048픽셀 이상
모든 사진을 다 종이로 인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사진을 다 크게 뽑는 것도 아니죠. 35mm 필름 사진을 8x10인치 정도로 뽑아도 감상하기에 매우 충분한 큰 사진입니다. 더 크면 따로 큰 파일북이나 포트폴리오 북, 혹은 더 크면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어야 가치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8x10인치 정도의 사진(실제로는 가로세로 3:2 비율이므로 6.7x10인치쯤)을 뽑는 데에는 300dpi를 기준으로 잡아도 3000x2000 픽셀이면 충분합니다. 조금 실용적으로 화질을 양보하면 200dpi면 충분하므로 2000x1300 픽셀쯤이어도 충분히 좋은 품질로 뽑을 수 있습니다. 3600x2400픽셀이면 8x12인치를 네이티브로 뽑을 수 있고, 크기가 커질수록 감상하는 거리가 멀어지므로 화질을 조금 양보하자면 16x24 인치 정도를 뽑아도 충분한 품질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니콘 쿨스캔의 5600 픽셀은 18인치를 네이티브로 커버합니다. 12x18인치를 화질양보 없이 뽑을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그렇게 큰 사진을 언제 뽑을 수 있을까, 몇 장이나 뽑게 될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컷당 수백MB가 넘는 사진들로 한 롤 한 롤 스캔해서 하드디스크에 저장한다면 롤당 몇GB씩 스토리지만 차지할테니까요. 심지어 유효해상도로는 더 부족한 평판형으로 최대해상도를 이용하면 용량만 더 큰 이미지들을 저장하게 될 겁니다.
만일 수십인치급 이상의 큰 사진을 뽑고자 한다면 그 컷들만 따로 크게 스캔해두거나 혹은 업체에 의뢰하는 것도 효율상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니콘의 4000dpi로 읽어낸 5600픽셀로도 30인치급 사진 인화에 무리없는 정도가 됩니다. 더욱 좋은 품질의 사진을 원한다면 가상드럼을 이용해서 읽어들여두면 될 겁니다.
인화용 이미지: 3000~3600픽셀 정도
필름의 물적 특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기때문에 보존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품질로 데이터를 뽑아 디지털적으로 저장해두는 것이 좋을 수 있는데, 이러려면 현재로서는 최소한 가상드럼 스캔을 이용해야 합니다. 지금 제조되고 있는 가상드럼 스캐너의 최고품질은 16비트 8000dpi 입니다. 아마도 700mb 근처의 용량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만 컬러네거티브의 경우 색상 재현이 조금 다르고 먼지제거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한 컷 한 컷에 매우 공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더 크게 스캔해서 가지고 있다가 화면용으로 리사이즈해서 올리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십니다.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중에 풀스크린을 덮을 이미지라면 이왕이면 충분한 사이즈가 좋겠죠. 지금은 충분하지만 미래에는 또 작은 크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필름을 초고해상도로 스캔한다고 해도 더 선명해지고 더 또렷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필름은 필름 자체가 가진 분해능이 있고 필름 입자들의 한계가 있습니다. 이마콘의 8000dpi 결과물을 보면 필름에 촬영된 상이 더 선명한 것보다는 필름 입자들 하나 하나의 모양이 참 또렷하다는 것을 발견하시게 될지도 모릅니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덧.
- 이 글의 핵심은 '해상도'에 대해서만입니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스캐너의 종합적 판단은 여러가지 기준에 의해서 해야 합니다. 스캐너라는 장비는 해상도 뿐만아니라 속도, Dmax, 소프트웨어, 운용상의 편의성과 효율성, 내구성 등 여러가지 평가요소가 있으며 이 밖에도 크기나 무게, 가격과 같은 요소도 고려대상입니다. 업소용 스캐너보다 개인용 스캐너가 더 뛰어난 점도 있지만 속도나 편의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고, 가상드럼 스캐너가 끝판왕인 것 같아도 매우 여러가지 단점들이 있습니다. 평판이 떨어지는 것 같아도 평판만이 가능한 것들, 평판만의 장점들이 있습니다. 저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업소용을 배제한다면 5000ed와 V800을 같이 쓰겠다는 정도로 답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