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2018. 3. 31. 13:18

이전 기사에서 일포드의 흑백필름이 담긴 일회용 카메라는 재활용이 무척 쉽다고, 그 과정을 상세히 포스팅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해본 거라 매우 많은 과정이 쓸 데 없거나 혹은 삽질이거나 ㅋㅋㅋㅋㅋ


그리고 필름을 꺼낼 때 부러뜨리고 금가도록 만든 부분으로 빛이 새어들어와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번 더 해보는 과정에서 아주 손쉽게 위험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 그리고 빛도 덜 새어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기에 개정판으로 다시 포스팅합니다.


이렇게 하시면 꽤 더 여러번 재활용이 가능하실거예요. 카메라의 원형 그대로를 거의 보존하면서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일회용 카메라입니다. 일포드는 흑백필름만 생산하는 업체인데 일회용으로는 XP2가 들어 있는 버전과 HP5가 들어 있는 버전이 있습니다. XP2가 들어 있는 버전을 구입하시면 다른 컬러필름과 똑같은 방식(C41)으로 현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필름을 현상하는 곳이면 어디든 작업이 가능합니다. 컬러약품으로 현상하는 흑백필름이거든요. HP5가 들어있는 버전을 구입하시면 흑백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곳에 맡겨야만 합니다.


코닥이나 후지필름도 일회용 카메라를 만들지만 필름을 재장전하는 것에는 약간 난도가 있습니다. 코닥은 그래도 쉬운데 후지는 꽤 어렵습니다. 참, 일회용 카메라들 중에는 이렇게 일단 사용되고 남은 들을 업체가 수거해서 재생한 다음 자기네 상표를 붙여 파는 저렴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카메라들은 재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일포드의 카메라는 퍽 쉽고 결과도 좋아서 굳이 해보려고 했던 거죠.



일단 구입하셨으면 신나게 촬영을 합니다. 보통은 카메라째로 현상소에 맡기고 현상소에서 알아서 카메라를 부순 뒤 필름을 꺼내지만, 우리는 재활용할 거라서 직접 필름을 꺼낼 겁니다. 그것도 카메라를 부수지 않고!



이전 버전의 포스팅에서는 부수어서 필름을 꺼낸 카메라를 사용했기때문에 오른쪽 아래의 필름모양 부분이 갈라져 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카메라도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갈라진 부분을 완전히 잘 막아서 쓰지 않으면 마치 스폰지가 삭은 카메라들처럼 빛이 새어들어갑니다. 특히 아랫판보다도 필름 와인딩하는 부분이 갈라져 벌어져서 빛이 스며들게 됩니다. 그래서 갈라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게 잘 분리해야 합니다.



사진관이나 현상소에서는 이렇게 합니다. 옆구리만 벌려 뜯어내면 필름을 꺼낼 수 있거든요. 이전 버전의 포스팅에서도 그랬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과정은 필름만 꺼내는 거니까 암백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냥 눈으로 보면서 합니다.



일자 드라이버를 준비해서 아랫쪽 가운데 판 사이로 밀어넣습니다. 무리한 힘을 주지는 마세요. 오른쪽 둥그런 판은 잘 벌어지고 갈라지도록 부서지기 쉽게 돼 있습니다. 살짝 살짝만 해도 뒷판은 잘 분리됩니다.



드라이버를 깊이 밀어넣어서 위쪽 세 개의 노치가 분리될 수 있도록 들어줍니다. 이 때 카메라의 양 옆구리쪽도 드라이버를 살짝 넣어서 맞물려 있는 노치들이 분리되도록 해 준 다음 아랫판을 들어주면 뒷 뚜껑만 분리됩니다. 왼쪽의 두 개를 먼저 들어주고 오른쪽의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어주면 됩니다. 무리한 힘을 주면 갈라지니까 살살 하세요. 하다 보면 자칫 앞판이 분리될 수도 있을텐데 회로를 절대 만지지 않도록 하면서 다시 끼워주세요. 앞판을 빼낼 필요는 없습니다. 회로를 손으로 만지면 엄청난 전기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고 만진 부분에 화상을 입으실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뒷 뚜껑이 분리됐습니다. 오른쪽에는 24컷짜리 일포드 XP2 필름이 들어 있네요. 일회용 카메라들은 왼쪽의 스풀에 필름이 풀려 나와 있다가 찍으면서 감겨 들어가는 거라 다 찍고난 다음이면 그냥 부수어 필름을 꺼내도 됩니다. 다만 우리는 재활용할 거니까 이렇게 하는 거죠.



앞판을 분리하지 않았기때문에 훨씬 안전하지만, 그래도 대형 캐패시터가 구석에 드러나 있어 손으로 만질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화살표 부분을 만지면 여전히 감전될 수 있거든요.



카운터를 맞춥니다. 장착된 필름은 24컷짜리지만 필름의 앞쪽 여유분까지 찍을 수 있기 때문에 27컷이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찍어보면 30컷까지 찍을 수 있더군요. 36컷짜리 필름을 다시 끼울 거면 39 정도에 맞추면 됩니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두 가지 버전이 있더군요. 카운터가 27까지밖에 없거나 혹은 39까지 있거나.. 27까지밖에 없는 버전이면 거꾸로 12컷 정도를 되돌아가는 위치까지 뒤로 돌려줍니다. 그럼 한바퀴 돌아서 0으로 가겠죠. 그냥 돌리면 잘 돌아갑니다.


<이제부터 암백 안에서의 작업입니다.>


암백 안에는 새로 장착할 필름(400짜리 넣으세요), 카메라, 뒷판 이렇게 세 가지만 넣으면 됩니다. 흑백필름이 들어 있던 카메라지만 컬러필름을 넣어도 됩니다. 컬러사진도 아주 잘 나옵니다.



암백 안에서 스풀에 필름을 감아줍니다. 스풀의 한쪽(위 사진의 오른쪽부분)은 두줄로 홈이 파져 있고 그 부분이 카메라 아래쪽 방향입니다. 이전 버전의 포스팅에서는 거꾸로 감았었는데, 그냥 지금 이 방향대로 감아주면 됩니다.



팽팽하게 잘 감아줍니다. 지금 보이는 이 필름면(앞면)은 필름을 감을 때 정도의 지문은 묻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사진은 뒷면인 유제면에 찍히는 것이고 암백 안에서 손으로 만질 때 앞면에 조금 묻은 지문은 현상할 때 씻겨나가니까요. 



필름을 카메라에 장착합니다. 퍼포레이션(구멍들)이 톱니바퀴에 잘 물려서 팽팽한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왼쪽의 스풀을 엄지손가락으로 잡고 있으면 오른쪽 필름 파트로네는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뒷 뚜껑을 잘 맞춰 닫아줍니다. 아래쪽 바닥판은 튀어나오거나 단차 없이 매끈하게 딱 맞아야 합니다. 사방이 잘 맞았으면 어디 한 곳도 단차가 안 생기고 아귀가 잘 맞습니다. 그러면 꼭꼭 눌러 딱딱 소리가 나게 잘 닫아줍니다. 사방을 만져서 잘 맞물렸나 확인합니다. 이제 암백에서 꺼냅니다.


어쨌든 분리하는 과정을 거쳤기때문에 약간 벌어지거나 혹은 미세하게 조금 깨지거나 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완벽하게 딱 맞지 않고 1mm쯤 벌어지거나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스카치 테이프 같은 것으로 붙여 고정해줍니다.



이제 새 필름을 장착한 30mm F9.5짜리, 플래시까지 장착된 아주 가벼운 새 카메라가 하나 생겼습니다.


어때요, 참 쉽죠?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8. 3. 15. 22:35

이 포스팅은 구버전입니다. 이것보다 훨씬 쉽게 작업하는 새 버전을 http://irooo.tistory.com/72 에 새로 포스팅해두었습니다. 쉽게 하는 걸로 읽어보세요.





지난번 포스팅에서 일포드의 흑백필름 XP2가 들어 있는 일회용 카메라가 아주 사진이 잘 나온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냥 버리기에는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혹시 필름을 넣어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연구해보았습니다. 결론은 그렇게 어렵지 않네요. 궁금한 분들은 아래를 보시고 따라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 두세 번 정도 재활용하면 아마도 수명을 다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코닥에서 나오는 펀세이버 일회용 카메라도 많이들 재활용하시는데 어쩌면 이 카메라는 그것보다 조금 더 쉽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카운터 리셋이 너무너무 손쉽거든요.


준비물: 다 쓴 일포드 일회용카메라(XP2나 HP5가 들어 있었던 것들 중 어떤 것도 좋습니다. 구조는 같으니까요), 일자드라이버, 암백, 검정 절연테이프, 새로 넣을 필름(감도 400 이상이면 좋습니다)


<지금은 밝은 곳에서 해도 되는 작업입니다.>



이 카메라는 필름을 꺼내기 위해 현상소에서 필름이 장착되었던 부분을 뜯어낸 것이라 사진처럼 그 부분이 벌어져 있습니다.



드라이버를 이용해서 앞판을 분리합니다. 



깨지거나 하지 않도록 무리한 힘을 주지 마시고 홈 부분들을 아랫판과 양 옆구리쪽을 들어내면 간단히 앞 투명판이 분리됩니다. 투명판 안쪽의 종이는 그야말로 포장입니다. 뒤쪽의 본체와 뒷판만으로 카메라의 모든 구조가 사실상 완성이고 필름으로 빛도 새어들어가지 않습니다. 앞쪽 판은 외형과 포장(내부의 종이를 바꾸면 다른 필름용이 되겠죠)용인 겁니다.



이번엔 카메라는 잠시 바닥에 놓고 준비한 검정 절연테이프를 5cm 정도의 길이로 잘라 두 겹으로 겹쳐 붙입니다. 왜 이런 걸 하냐고 묻지 마시고 그냥 두 겹 혹은 세 겹으로 두껍게 붙이세요.



일회용카메라들에는 대개 플래시가 내장되어 있는데, 구조가 간단하기때문에 케이스 안쪽으로 회로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PHOTO FLASH'라고 쓴 부분이 대형 콘덴서인데, 이 부분의 접점을 만지면 전류량은 크지 않지만 전압은 매우매우매우 매우 강력한 전기에 감전될 수 있습니다. 따끔 정도가 아니고 쇼크를 입을 수 있는 정도이며 화상을 입은 것처럼 오래 욱씬거릴 수도 있으니 절대로 만지지 마시고 조심하세요. 절연테이프는 암백에 이 부품들을 넣고 작업해야 하는데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플래시 옆의 접점부를 가려 막기 위해 붙여주는 용도로 준비한 것입니다. 한 겹으로 붙이면 그 위로 전기가 통할 정도로 강력합니다. 꼭 두 겹 혹은 불안하다면 세 겹 정도 붙여서 사용하세요.



이 부분을 잘 덮고 위쪽 콘덴서 발 부분의 배선과 옆구리쪽 부분까지 잘 덮히게 감싸주면 됩니다. 이 절연테이프는 나중에 또 중요한 용도에 사용하게 됩니다.



이제 뒷판을 분리합니다. 분리해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카메라는 앞쪽 투명 커버는 커버일 뿐이고 실제 필름은 몸체와 뒷판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앞쪽이 투명하다고 해서 빛이 새어 들어가거나 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드라이버를 넣어 살짝 들고 배터리 아래쪽 판을 손으로 들어주면 뒷판도 분리됩니다.



이렇게 작업하실 때 아까 절연테이프로 감싸주었던 접점 쪽은 일단 주의해서 잡도록 하세요. 혹시나 덜 가려진 접점이 손에 닿으면 으아....



일회용카메라의 핵심 구조입니다. 코닥이나 후지는 왼쪽에 보이는 스풀이 없거나 하기도 한데 일포드는 스풀이 있어서 더 작업하기 쉽네요. 이제 카운터를 설정해야 합니다.



다른 브랜드와 다르게 일포드 일회용 카메라는 이 카운터 부분을 그대로 돌려서 세팅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처음 구매했을 때는 27컷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36컷짜리 필름을 넣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에는 39가 보이도록 카운터를 돌려 세팅해 두고 새 필름을 장착하기로 합니다. 36컷짜리 필름도 실제로는 38컷에서 39컷도 찍히기도 하니까.. 카운터는 그렇게 보자구요.



필름은 감도400 이상의 것을 준비합니다. 800 이상은 가격이 좀 나가니까 400이 가장 좋겠죠. 일회용 카메라는 조리개와 셔터가 고정되어 있으므로 어두운 곳에서는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해야 하는데 그래서 감도가 높은 것이 유리합니다. 원래 들어 있는 XP2 필름도 감도가 400이었죠.


왼쪽의 스풀에 모두 감겨 있다가 촬영하면서 오른쪽의 필름 파트로네 안으로 되감겨 들어가는 방식으로 촬영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암백 안에서 작업해야만 합니다.



준비한 암백에 필름과 본체, 앞뒤 커버를 모두 넣습니다. 나중에 방향과 자리를 잘 파악해서 작업해야 하니까, 암백에 넣으면서 왼쪽에는 앞커버, 가운데에는 본체, 그리고 필름과 스풀, 오른쪽에는 뒷커버 하는 식으로 자리를 잡아서 넣고 내용물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팔을 끼웁니다.


<이제부터는 암백내에서 하는 작업입니다. 편의상 작업내용이 보이도록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필름을 왼쪽의 스풀에 감아주어야 합니다. 감는 방향은 사진처럼 역방향입니다. 스풀은 위쪽은 일자홈, 아래쪽은 끼워넣을 수 있는 틈이 있는 이중홈이 있으니 방향에도 주의하세요.



이런 식으로 단단하고 타이트하게 감아줍니다. 처음 하시는 분들은 이 작업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암백 작업이 늘 그렇듯이 시원한 곳에서도 한참 하다보면 손에 땀이 나고 암백 안이 더워집니다. 가능하면 빨리 작업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갑을 끼면 좋겠지만 감각이 매우 둔해져 이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없다면 암백 안에 화장지 몇 장을 같이 넣어 손과 손끝의 땀을 닦으면서 하시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못 쓰는 필름이 있다면 암백 밖에서 연습을 조금 해보고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자꾸 풀리기 때문에 요령껏 해야 합니다. 필름에 땀이나 지문이 많이 묻으면 사진에도 나올 수 있으니 필름의 촬상면 안쪽은 될 수 있으면 안 만지도록 하세요. 양 옆의 퍼포레이션 부분만 잡으면서도 충분히 감을 수 있습니다.



36컷짜리 필름을 전부 감으면 이런 정도의 굵기가 됩니다. 이대로 풀리지 않도록 잡고 저어기 보이는 본체에 장착한 후 뒷 커버까지 닫아야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안착시킵니다. 왼쪽을 잡으실 때는 접점을 만져서 감전되지 않도록 주의하시면서 또한 필름 타래가 풀리지 않도록 하셔야 하는데, 일단 왼쪽 스풀을 자리에 넣었다면 아래 바닥쪽에서 스풀의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어 잡아주면 편리합니다.



이제 뒷 커버를 닫습니다. 자리를 잘 잡고 꼭꼭 눌러서 딸깍 딸깍 소리가 나도록 잘 닫아줍니다. 이 때 바닥의 구멍으로 스풀을 잡고 있으면 필름 타래가 안 풀리도록 작업할 수 있습니다.



필름을 뺄 때 필름 파트로네 장착부를 들어 뜯어냈기 때문에 바닥이 갈라져 있습니다. 이 부분으로 빛이 샐 수도 있겠죠. 이 부분을 위해서 아까 그 절연테이프를 사용하기로 합니다.



접점을 만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아까 그 절연테이프를 뜯어 임시로 뒷판에 살짝 붙여둡니다. 나중에 떼어서 사용할 겁니다.



투명 앞 커버를 끼워줍니다. 접점 안 만지도록 주의하세요. 안에 들어 있던 XP2 표시가 되어 있던 종이 조각은 빼봤습니다. 그랬더니 투명한 속 구조가 보이는 아주 특이한 카메라가 되었네요.



<이제 암백에서 꺼내도 됩니다.>



암백에서 꺼낼 때는 필름 장착부를 손으로 눌러 들뜨지 않도록 하면서 꺼내세요. 자칫 빛이 살짝 스며들 수도 있습니다.




구석구석 앞커버 뒷커버가 덜 맞물린 부분이 있다면 잘 맞춰 꼭꼭 눌러가며 잘 끼우시고, 아까 뒷판에 붙여두었던 절연테이프를 이용해서 갈라져 깨진 부분, 그리고 들떠서 덜 맞물리는 부분을 힘받게 붙여 고정시켜줍니다.



이제 모든 작업이 끝났습니다. 사진 아주 잘 나오는 새 일회용 카메라가 하나 생겼네요!






Posted by 이루"
사진이야기2018. 3. 13. 21:47


저렴하면서도 매우 성능이 좋았던 아그파의 비스타플러스 200 필름이 더는 생산되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dpreview 에 떴습니다. Japan Camera Hunter가 먼저 기사화시킨 후에 이 소식이 빠르게 확산되었네요.


사실, 이 필름의 생산과 공급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는 작년에 포착됐습니다. 한국에서도 싸면 2천원 후반대, 보통 3천원 초반대에 팔리던 필름인데 영국의 Poundland라는 샵에서 1유로 내외의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뭔가 공급에 문제가 있지 않는가 하는 얘기가 나왔고 꽤 공식적으로 '더는 생산되지 않고 있다'는 게 확인 된 건데요.


독일의 브랜드인 AGFA의 사진용 필름사업 부분은 이미 2005년에 파산했습니다. 이 때 이탈리아의 루푸스(Lupus) 이미징이 이 상표와 재고를 인수했다고 합니다. 한동안은 독일의 재고를 포장해서 Vista 라는 이름 그대로 판매했지만, 몇 년 후 Vista plus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판매가 시작됩니다. 이 때에는 100, 200, 400 감도의 필름들이 모두 있었지만, 한두 해 뒤 100은 사라지고 200과 400만 판매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AGFAPhoto의 브랜드로 판매되는 슬라이드필름으로 CT Precisa가 있었고 꽤 최근까지도 판매가 계속되어 왔습니다만, 이 역시 작년 하반기에 단종인 것 아닌가, 새로운 재고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에서 나왔었습니다.


사실 Vista plus는 유럽에서 생산되지 않고 일본의 후지필름에서 생산한 필름을 리브랜딩(주문자상표 부착)방식으로 판매한 것이었습니다. 현상해보면 퍼포레이션 부분에 필름 코드가 아닌 후지필름의 리브랜딩 전용 마킹인 200N 혹은 400N이 적혀 있습니다. 후지필름의 컬러 네거티브 필름들이 가진 바코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베이스도 후지의 것입니다.


후지필름은 자사의 필름 상품을 판매하는 것 이외에도 OEM 방식으로 여러 다량 주문자들에게 자신들의 브랜드로 판매할 수 있도록 매우 저렴한 가격에 필름을 공급했었습니다. 이 필름들은 모두 퍼포레이션에 200N으로만 마킹되는 리브랜드 시리즈들이었습니다.(따라서 현상후에 필름만 보고 어떤 필름인지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Perutz

TUDOR

Rossman

WPhoto(Walgreen)

AS Color

MyHeart

CVS Color

Sunny16


(등등 그 외에 몇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베이스 특성과 발색특성 등을 종합해보면 이 필름들은 모두 후지필름의 C200 과 거의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상표나 패키징에서 얻어지는 플라시보 효과로 인해 사람들은 '다른 필름들'인 것으로 생각하고 이 필름들로 사진을 찍어왔지만, 현상해보면 모두 200N 코딩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주 미묘한 유제배합의 차이 정도만 있(거나 한 듯한 정도에 불과할 뿐)어 필름들을 섞어놓은 뒤 블라인드 테스트로는 거의 구분하기 힘든 유사함을 보여줬습니다.


지금도 서로 다른 패키징과 서로 다른 가격으로 서로 다른 필름인 것처럼 판매되고 있지만, 사실상 거의 같은 필름들이라고 봅니다.


아그파 비스타 플러스 필름은 세계적으로 공급돼 있는 재고가 소진되면 더는 판매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슬라이드필름이었던 CT Precisa는 발색특성으로 보면 아마도 후지필름의 프로비아 100F가 아니었나 하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전의 실제 AGFA의 재고를 판매하던 시절의 CT는 퍼포레이션부분의 글자가 로마자였지만, 후지필름에서 공급받기 시작하면서는 R100 이라고 마킹되어 왔습니다. 이 역시 단종인 것 같구요.


필름사진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면서 필름 소비량도 늘어나고, 가장 큰 경쟁자인 코닥이 생산을 중단했던 슬라이드필름을 다시 만들겠다고 하고, 새 흑백필름을 내놓고, 이탈리아나 독일 영국 일본에서도 이런저런 다른 흑백필름을 내놓고, 새 컬러필름도 또 만들겠다고 하는 이 시점에서 비스타라는 저렴하고도 뛰어난 성능을 가진 필름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후지필름이 더는 리브랜딩 방식으로 필름을 싸게 공급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필름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싼 필름들을 더 싸게 다른 판매자들에게 공급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직접 판매하는 것이 수익성이 더 좋다는 생각이겠죠. 하지만 후지필름은 이미 최근에도 프로비아 400X를 단종시켰고, 벨비아100F를 없앴으며 내츄라1600도 곧 단종시킨다고 합니다. 필름 수요가 더 많아지면 새로운 필름을 만들어낼 생각을 할까요?


코닥은 거대한 몸집을 줄이고 줄여 사진용 필름과 감재의 생산 판매만으로도 굴러갈 수 있는 몸집이 되었기에 새 필름을 발매하고 시장 수요에 대응하는 것으로 성장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이미 필름사업이 아니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만큼 체질도 바꾸고 사업분야도 거의 바꾸었습니다. 후지필름의 매출규모 전체에서 필름사업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3%도 안 된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안 해도 그만인 사업이 된 셈이죠. 열 배쯤 성장해서 30%로 커진다면, 아니면 경쟁업체나 다른 브랜드의 필름들이 더 폭발적인 수요 증가 덕택에 매출과 순익규모가 열 배쯤씩 마구마구 커진다면 후지필름도 약간 정신을 차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아그파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루푸스가 새로운 필름을 생산하거나 혹은 새로운 필름 공급처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그파 상표가 붙은 필름들을 더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가져다 팔기만 할 수 있다면 조금씩 더 많이 팔릴 거라는 확신은 있을텐데 말입니다.


아직 한국의 판매상에는 꽤 재고가 남아 있는 것 같네요. 필요하신 분들은 얼른 쟁여놓으시기 바랍니다. 아, 물론 후지필름의 C200을 써도 비슷한 사진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Posted by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