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필름은 세룰로우즈 베이스에 감광성을 띄는 유제가 발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빛을 받아 전하를 띈 입자가 현상액(developer)에 반응하면 은으로 변하고, 은으로 변하지 않은 남은 유제를 정착액(fixer)로 녹여내면 비로소 현상이 되어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은 (전습)-현상-정지-정착-(안정)-수세의 과정을 거치게 되죠.
여러 약품에 반응하는 방식이나 특성이 달라 필름과 현상액마다의 궁합도 다르고, 그래서 특정한 필름과 특정한 현상액을 취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달리 쓰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Monobath는 이런 과정을 단 한 번의 과정으로 줄여놓은 현상약품입니다. 현상과 정착이 동시에 이뤄져 한번의 bath만으로 전체 현상과정이 끝나게 되죠.
Monobath Chemistry는 최근에 새로 개발된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폴라로이드 타입의 chemistry에서도 이런 방식이 사용되었었고, R3/R5라든가 FF, 또는 FilmPhotographyProject(FPP)에서도 Monobath 타입의 약품들이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습니다.
모노배스의 장점은 간편함입니다. 약품들을 따로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으며 특정 비율로 희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온도를 맞추고 정해진 시간동안 정해진 방법으로 교반하면 됩니다. 많은 경우에 필름마다의 데이터조차 필요없으므로 그냥 모든 필름을 한꺼번에 같은 탱크에 넣고 현상하면 되기도 합니다.
씨네스틸에서 2018년 중순에 발표한 Df96은 액체와 가루 형태로 판매됩니다. 자세한 정보는 씨네스틸 사이트에 있으며 이곳에서도 주문이 가능합니다. https://cinestillfilm.com/products/df96-developer-fix-b-w-monobath-single-step-solution-for-processing-at-home?variant=7367677247522
하지만 한국으로의 직배송 비용이 제법 나가기때문에 B&H 등에서 배대지를 이용하시는 편이 훨씬 저렴합니다. 가루형태는 16.99, 1리터 액체는 19.99불입니다. 이것으로 최소 16롤 이상(135기준)의 필름을 현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손이 작아서 통이 커 보이지만 1리터 용량입니다. 500ml짜리 생수병 두 개..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화씨(섭씨)
70도(21도) 보다 차갑게 하면 감감효과가 나타난다고 하고
70도 에서는 교반을 최소로 하여 6분 이상
75도(24도)에서는 간헐적 교반(30초마다 5초씩과 같은)으로 4분 이상
80도(27도)에서는 연속교반으로 3분 이상
만 해주면 현상이 끝난다고 쓰여 있습니다. 증감/감감을 위해서는 스톱당 화씨10도(대략 섭씨6도)정도 높게/낮게 작업하라는군요.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시간은 1년 정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많이 찍으시거나 여행이라도 다니거나 하시는 분이라면 매우 편리하겠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약품을 따로 희석하거나 뭘 따로 준비하거나 할 필요 없이 그냥 이 약품의 온도만 맞추면 됩니다.
아니 사실 그럴 필요조차 없이 온도계로 재봐서 21도~27도 사이라면 위에 쓰여진 방법대로 현상하면 됩니다. 각 과정에 플러스마이너스 화씨2도(섭씨 1.2도) 정도의 관용도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20도~28도 이내에서 가까운 값으로 작업하면 되겠네요.
이전의 모노배스들이 R5의 경우 30도에서 6분, FPP의 약품이 24도에서 3.5분이니까 씨네스틸의 Df96도 매우 빠르게 작업이 가능합니다. 1리터에 16롤 이상이라는 효력도 꽤 좋네요.
그래서 HP5 한 롤, 켄트미어400 한 롤을 준비했습니다.
데이터 따위 신경쓸 것 없이 그냥 릴에 감아서 한 통에 넣으면 됩니다.
로터리 교반으로는 240ml만 필요하므로 약품을 따라봤습니다. 거의 무색투명하고 냄새도 전혀 안 나는 수준입니다.(일부러 맡아보지는 말라네요)
아주 느리게 교반해서 24도에서 4분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열어봤더니.. 정지도 정착도 필요없이 그냥 현상이 되었군요!
현상되어 나온 게 분명합니다.. @.@
이렇게 사용한 약품은 다시 통에 부어넣고 다음번에 재사용합니다. 이런 식으로 16롤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제조사에서 보증하고, 그 이상은 현상이 나올 때까지 더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더 주라네요.
보통의 흑백현상과정과 결과물의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으므로 수세는 동일하게 해줍니다.
스캔해봤습니다.
Ilford HP5 400
Kentmere 400
일단 샤프니스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HP5는 컨트라스트가 약간 강한데, 특히 하이라이트가 조금 부담스럽게 날아갑니다. 스캔과정에서 꽤 잡아줘야 합니다. 그에 비해 켄트미어400은 매우 적절한 정도로 현상이 되었고, 실제 사진에서도 훨씬 좋은 계조와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켄트미어와 유사한/혹은 비슷한 계열의 필름들인 APX, RPX, UlraFineExtreme 과 같은 필름들이 아주 잘 나올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여러 필름들에 대한 데이터를 위의 씨네스틸 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감도로 촬영했지만, HP5는 800 정도로 찍었다면 더 좋은 네거티브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약품을 사용하는 온도와 시간은 바꾸지 않으므로 각 필름별로 권장하는 촬영감도가 적혀 있는 거죠. 마치 Diafine처럼.
1리터에 19.99불이고 운송비를 생각하면 병당 약 3만원이 넘게 됩니다. 20롤을 작업한다고 해도 롤당 약품가격은 1500원이 넘게 듭니다. 하지만 편의성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비용은 매우 납득이 됩니다.
이전의 모노배스 약품들보다 실용성 면에서도, 가격적 면에서도, 결과물의 측면에서도 꽤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정착 먼저 부어서 홀랑 날리는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겠군요.